지난 1월 시행…“비용부담 및 홍보 미흡” 문제
세부 기준 부재로 현장 혼란도 지속 증가
정부가 장애인 등 정보취약계층을 위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외식업계를 중심으로 혼란과 불만이 커지고 있다. 세부 기준이 모호하고, 비용 부담 역시 상당하다는 이유에서다.
외식업계에 따르면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지난 1월28일부터 근로자 100인 미만이면서 면적 50㎡(약 15평) 이상 식당과 카페 등은 키오스크나 테이블 오더기, 자동 출입 인증시스템 등을 설치하려면 점자와 음성 안내 기능 등이 담긴 기계를 써야 한다.
일반 기기를 쓰고 있다면, 내년 1월28일까지 정부가 고시한 기준에 맞는 제품으로 바꿔야 한다. 화면 높이나 터치 감도, 음성 안내 기능 등이 포함돼야 하며, 휠체어 이용자도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의무를 어기면 30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경기 불황으로 힘든 자영업자를 도와주진 못할망정 추가 부담을 지우는 포퓰리즘 정책”이란 반발이 쏟아지고 있다. 시행령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기술 기준을 충족하는 기계를 쓰도록 규정하는데 이런 기기는 최저 340만원에서 최고 700만원 선이다.
정부는 외식업계의 적극적인 도입과 소상공인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최대 500만원까지 비용을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지만 예산을 고려하면 최대 5000곳 정도만 혜택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추산 설치 대상(3만8000여곳)에 턱없이 부족하다.
아울러 이미 일반 키오스크를 설치해, 배리어프리 기능이 있는 키오스크에 대한 지원금을 추가 신청할 수 없는 자영업자들의 불만도 크다. 정부 정책으로 일반 키오스크 설치 비용을 지원받으면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지원금을 추가 신청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서대문구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A씨(50대)는 “정책에 대해 미리 알았더라면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설치를 신청했을 것”이라며 “설치 당시 배리어프리 기능에 대한 안내를 받지 못했는데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할 어려운 시국에 자비 교체에 대한 부담이 크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추가 교육 부담도 우려를 자아내는 부분이다. 기존 직원들에게 장애인 접근성 대응 교육을 별도로 실시해야 하는 상황인데, 인력 운영이 빠듯한 소규모 매장일수록 이 같은 교육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현재 외식업계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탄핵 정국이 이어지는 정치 불안에 더해 고환율, 내수 부진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황이다. 당장 하루 장사를 이어가는 것도 빠듯한 상황이라 업계에서는 불만이 커질 수 밖에 없다.
특히 ‘어디까지’ 갖추어야 법을 준수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가 되고 있다. 예컨대 기기만 바꿔도 되는 것인지, 별도로 보조 인력을 둬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는 게 현장 대다수의 반응이다.
더 큰 문제는 배리어프리 기기 제조가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테이블오더 업계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배리어프리 무인정보단말기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정부가 완화된 기준안을 마련하지 못해 테이블오더 기기는 검증을 받은 제품이 전무한 상황이다.
결국 외식업 관계자들은 “접근성 강화는 필요하지만, 현장 실정에 맞는 세밀한 가이드라인과 재정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키오스크 접근성 개선이라는 목표에는 공감하지만 애매한 기준과 준비 부족, 불편과 혼란 등이 주배경이다.
불만이 커짐에 따라 정부는 상반기 내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도입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업계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회의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정책 개선안 논의가 지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러 부처가 얽혀있고 부처마다 입장이 엇갈려 협의에 난항을 겪고 있다. 해당 법은 복지부 소관인데 배리어프리 기술 기준 관련 검증 주체는 과기부, 보급 지원은 중기부다. 차별 행위 신고가 들어왔을 때 진정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과태료 부과는 법무부가 맡는다.
정환국 제이앤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현재 배리어프리 관련 가이드라인은 구체적인 세부 기준이 없어 현장에서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며 “특히 테이블 오더 시스템의 경우, 직원 호출 기능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데도 보여주기식 정책이라는 지적까지 나오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체적으로 UI(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과 관련해서도 문제점이 있다. 개발 업체들의 경우 UI를 어떻게 편하고 아름답게 구현할지에 따라 경쟁력을 갖추는데, 정부 가이드가 지나치게 세세한 규격(버튼 크기 cm 단위까지)을 제시하면서 독창성이 제한된다는 불만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소상공인 입장에서도 어려운 점이 많다”며 “매장에 키오스크가 2~3대 설치된 경우, 일부만 교체해도 되는 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투고(To-go) 매장처럼 카운터형 키오스크가 설치된 경우, 휠체어 이용자를 고려해 1m20cm 이하로 설치해야 하는데, 카운터 높이에 맞춰야 하는지 별도로 조정해야 하는 지에 대한 지침 역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정 변호사는 “2층에 매장이 있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 휠체어 이용자가 접근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별도 예외 규정을 둘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며 “단순히 장애인 이용 편의성 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의 ‘적용 가능성’과 ‘실효성’을 함께 고려한 세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일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