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고객 정보 보호' 기본 못 지킨 SKT 도마 위
유심 교체비용에 과징금까지 수천억 손실 예상
'생색 안 나는' 정보보호 투자 아낀 처참한 대가
'낚은 물고기에 떡밥 안 준다'는 말이 있다. 부력망(물고기를 가둬두는 데 쓰는 원통형 그물)에 갇혀 도망도 못 가는, 이미 내 소유가 된 물고기에 떡밥을 주는 낭비를 할 이유가 없단 얘기다.
이동통신 시장은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분야다. 대한민국이라는, 좁다면 좁은 범위 내에서 SK텔레콤(SKT)과 KT, LG유플러스 등 3개의 부력망만 오가야 하는 소비자들은 '낚인 물고기'다.
더구나 정부에서 이통사간 과열경쟁을 막는다며 업체별 일정 점유율을 유지하도록 유도하면서 낚인 물고기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더 희박해졌다.
기업은 돈을 벌고 수익을 남겨야 존재 가치가 있다. 그러기 위해 재화는 '새 물고기'를 잡는 데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돈 버는 데 별 도움이 안 되는 지출은 줄이는 게 기업의 생리다.
이통사에게 이동통신 가입자는 '새 물고기'일까. 그들이 어떤 마인드를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가입자는 전형적인 '낚인 물고기'다. 재화가 집중적으로 투입될 대상이 아니란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주주들, 혹은 그룹 총수로부터 성과를 인정받아야 하는 이통사 CEO(최고경영자)들의 운신 폭은 제한돼 있다. 통신‧네트워크 품질이나 보안과 같은 분야에 많은 비용을 투입하느라 영업이익을 깎아먹는 건 성과로 내세울 만한 일이 아니다.
특히 보안에 대한 투자는 전혀 생색이 나지 않는다. 어떤 분야에서건 리스크 대응 비용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버리는 돈' 취급을 받게 마련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가장 많은 가입자를 보유한 SKT는 지난해 정보보호 투자비로 600억원을 썼다. 2위 이통사인 KT(1218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심지어 3위 LG유플러스(632억원)보다도 적다.
더 바람직하지 못한 건 2022년 627억원이었던 SKT의 정보보호 투자비가 그나마 줄었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LG유플러스는 두배 이상으로 늘렸고, KT도 20% 가까이 증액한 것과 비교된다.
공교롭게도 그런 SKT에 유심 해킹사태가 발생했다. 가해자는 해커고 SKT는 피해자지만, '고객 정보 보호'라는 기본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난의 중심에 섰다. 안전할 것이라 믿었던 SKT의 부력망 속 낚인 물고기들은 배신감과 불안감으로 아우성치고 있다.
"통신사업자는 안전한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무를 갖습니다. 이번 보안사고가 발생한 것은 완벽하게 사업자의 귀책입니다."
지난달 30일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제5차 전체 회의에서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의 이같은 질책에 유영상 SKT 사장은 아무 답변도 내놓지 못했다.
SKT는 전체 가입자의 유심 무상교체를 진행하고 있다. 2300만개나 되는 유심을 언제 다 교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비용 자체만으로도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1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언제 어떤 규모로 발생할지 모를 피해보상은 잠재적 리스크고,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역대급 과징금 부과를 예고한 상태다. 실추된 기업 이미지와 소비자 신뢰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막대한 손실이다.
물론 SKT가 정보보호 투자비를 좀 더 늘렸다 한들 이번 해킹 사태를 100% 막았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어차피 리스크 대응은 확률 싸움이다. 이런 참사를 막을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었다면 그렇게 해야 했다.
지난해 SKT는 1조8234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전년 대비 4% 증가해 양호한 실적을 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4%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700억원 정도다. 양호한 실적을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대신 소비자 정보 보호를 강화하는 데 이 돈을 투입했다면 그 몇 배로 추정되는 손실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낚은 물고기에 줄 떡밥을 아낀 결과는 처참하다. SKT뿐 아니라 경쟁 이통사들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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