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지기의 이야기㉒] 서울 종로구 인스크립트
“이야기에 미친 사람들이 만들어낸 세계들 즐겨달라”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연극 배우’들의 ‘희곡’ 사랑 담긴 인스크립트
인스크립트는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 위치한 희곡 전문 서점이다. 2023년 7월 연희동에서 문을 열었다가, 올해 3월 말 대학로로 자리를 옮겨 희곡 마니아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연극배우로도 활동 중인 박세인, 권주영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서점으로, 권 대표가 연기 학원에서 배우 지망생들을 가르치던 중, “희곡을 구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됐다.
더 많은 희곡을 읽고, 또 함께 나누기 위해 시작한 이곳에는 한국현대희곡부터 영화 관련 서적들까지. 연극, 영화 마니아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다양한 전문 서적들이 갖춰져 있다.
서점 문을 열면 카펫과 커튼 그리고 원형 탁자 등 ‘연극 무대’를 연상케 하는 ‘붉은색’의 향연이 이어진다. 박 대표의 “다소 과하진 않을까”라는 우려에도 권 대표가 밀어붙인 아이디어다. ‘무대’처럼 공간을 연출해 희곡 전문 서점 인스크립트의 정체성을 부각하고자 했다.
권 대표는 “희곡을 좋아하고, 또 희곡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두고 운영을 하는 건 맞지만, 동시에 또 희곡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다가가고 싶었다”라고 ‘강렬함’을 위해 ‘붉은색’을 메인 색깔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극장 같다는 느낌을 한 번에 주고 싶었다. 여러 고민 끝에 정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희곡’으로 소통하고, 확장해 나갈 인스크립트
전문 서적은 물론, 연극 관련 여러 행사를 통해 인스크립트가 연극 마니아들의 ‘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낭독 모임을 비롯해 작가의 집필 과정을 ‘전시’를 통해 선보이는 특별한 기획까지. 인스크립트를 더 ‘특별하게’ 완성하기 위한 다양하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 연극을 향한 호기심을 유발하며 진입장벽을 낮추고 있었다. 박 대표는 “낭독 모임은 연기 모임과 독서 모임의 중간 형태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연기를 전혀 해보지 않는 분들도 오신다. 연기 클래스면 부담스럽지만, 낭독이라면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여겨주시는 것 같다. 사실 눈으로 읽는 것과 입으로 읽는 건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과정을 통해 대중들의 ‘연극’ 또는 ‘무대’를 향한 열정도 직접 느꼈다. 권 대표는 거친 언어로 감정을 표현해야 했던 한 모임을 예로 들며 “욕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모임원 분이 오히려 시원함을 느꼈다고, 재밌게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하시더라. 다들 정말 잘 즐겨주셨다”고 말했다.
때로는 이곳이 무대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무대 콘셉트의 인테리어는 물론, 인스크립트에서 작은 연극 또한 직접 선보이며 독자와 관객들을 함께 아울렀던 것이다. 권 대표는 “때로는 지원금 등을 받지 못한 작업자들이 공연을 쉽게 열지 못할 때도 있다”면서 “몇몇 극단과 만나 두, 세 시간 정도 짧게 대관하는 시스템을 시도해 보면 어떨까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면 그들도 부담을 덜고, 그들이 더 ‘실험’을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리지 않을까”라고 의도를 설명했다. 연희동 운영 당시 공간 규모는 지금보다 작았지만, 그곳을 꽉 채워준 관객들을 언급하기도 했다.
때로는 연기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도 하면서 인스크립트를 ‘다양하게’ 활용하길 바랐다. 권 대표는 “연기 이야기는 술자리에서 많이 이뤄지기도 한다.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많지만, 내 이야기를 할 기회는 또 많지 않다. 각자의 연기 이론을 마음껏 이야기 해보자는 의도의 모임도 기획 중”이라고 말했다.
아직 운영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난 정도지만, 연극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독자들을 직접 만나며 나아갈 원동력을 얻기도 한다. “한 분 한 분을 만나다 보니까 여기 있을 때도 무대에 서 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무대에선 관객들이 조금 멀리 있다면, 이제는 가까이서 관객들을 접하고 있다”고 말한 박 대표는 “(손님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잘 존재해 주세요’다. 계속해 달라는 응원을 들을 때 투지도 좀 타오른다. 잘 운영해 보자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동시에 응원을 해 주는 분들이 이렇게 계시니까 이 공간이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연극에 대해 잘 모르는 관객에겐 ‘편하게’ 이곳을 즐겨주길 바랐다. 권 대표는 “(희곡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기보다는 지나가는 사람의 대화를 듣는다는 마음으로 접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나라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이야기를 좋아하시고, 또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만들어내시지 않나. 이야기에 미친 사람들이 만들어낸 여러 세계를 즐겨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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