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연극 등 공연계에서 아이돌 그룹 멤버들을 목격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미 탄탄한 팬덤을 보유한 이들의 공연 진출이 작품의 흥행과 직결되는 터라, 아이돌의 무대 도전은 소위 ‘티켓파워’를 활용한 상업적 성공을 담보하려는 제작사의 전략적인 선택으로 해석되곤 한다.
하지만 제작자들은 아이돌 캐스팅의 이면엔 흥행 담보 그 이상의 본질적 가치가 존재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이돌이라는 특수한 경쟁적 환경 속에서 단련된 그들만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다년간의 무대 경험에서 비롯된 전문성이 갖춰져 있다는 평가다.
공연 제작자들이 아이돌에게 주목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이미 협업과 무대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적응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그룹 활동은 필연적으로 멤버들과의 긴밀한 소통과 조화, 그리고 공동의 목표를 향한 협력을 요구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팀워크와 배려심은 앙상블이 중요한 공연 예술의 특성과도 맞아떨어진다. 또 데뷔 전 혹독한 연습생 시절부터 수많은 음악 방송과 콘서트 무대에 오르며 쌓아온 경험은 무대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을 길러준다.
또한 아이돌 특유의 끈기와 성실함도 제작자들을 사로잡은 이유다. 케이팝 아이돌 산업은 그 어느 분야보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수많은 연습생 사이에서 살아남아 데뷔하고, 대중의 인정을 받기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과 인내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며 활동을 이어가는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끊임없이 실력을 키워야 하는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성실함과 책임감은 공연 제작자들에게 깊은 신뢰감을 준다.
백암아트홀에서 30주년 공연을 올리고 있는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에는 전·현직 아이돌인 데니안(지오디), 후이(펜타곤), 종형(DKZ), 재한(오메가엑스) 등 무려 4명이 합류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작품의 연출자인 노우성 연출은 “흔히 말하는 아이돌, 싱어라는 정체성을 가진 배우들과 많이 작업했다. 이들이 겪는 어려움과 노력의 과정들을 지켜봐왔는데, 사실 이번 과정에서 이들에게 굉장히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늘 그랬듯 정말 순수하고 깨끗한 정신을 가진 배우들이다. 치열하게 연습했다. 비록 작은 극장에서 내면을 표현하는데 기술이 아직 덜 영글어서 세련된 맛은 적지만, 연습하면서 각자의 ‘동현’이 충분히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조금 날 것 같지만, 연출 입장에선 진실한 무대를 꾸며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신뢰를 드러냈다.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진정성 있는 몰입’을 위한 노력도 아이돌의 캐스팅 만족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인이다. 단순히 주어진 역할을 소화하는 것을 넘어, 캐릭터에 깊이 몰입하고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상상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는 아이돌 배우들의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연극 ‘랑데부’에 출연 중인 최민호(샤이니)는 극중 태섭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 이해하기 위해 공연을 준비하는 두 달 동안 매주 수요일 극중 인물처럼 자장면을 먹었다고 밝혔고, 후이(펜타곤) 역시 ‘사랑은 비를 타고’의 동현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머리를 감지 않거나, 방 청소를 하지 않는 등 캐릭터의 상황과 내면에 다가가려는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에피소드들은 아이돌 배우들이 단순히 자신의 이름값이나 인기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배우로서 작품과 캐릭터에 헌신하며 동료 배우 및 스태프들과 함께 호흡하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아이돌 배우들의 열정과 노력은 기존 배우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이 되기도 한다.
한 공연 관계자는 “모든 아이돌 출신 배우가 성공적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연기력 논란이나 작품과 조화롭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면서도 “하지만 이는 아이돌 출신 배우에게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실제로 아이돌이 합류함으로써 티켓파워 외적으로 연습실의 분위기, 배우들간의 선의의 경쟁, 새로운 관객 흡수 등 긍정적인 효과도 크다.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에 가려진 이들의 열정과 무대를 향한 진정성 있는 태도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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