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성·전문성 내세워 정비사업 진출 속도 낸 신탁사
“맡겨도 사업 진척 더뎌”…조합 추진으로 선회 움직임
건설경기 침체로 적자 경영도…“책임 준공으로 부실 전이”
한때 정비사업에서 전문성과 사업의 투명성을 내세우며 많은 선택을 받았던 신탁방식에 대한 선호도가 시들해진 분위기다. 신탁방식으로 사업을 추진 중인 단지 내에서도 기대했던 것보다 이점이 크지 않다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7일 도시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신탁 방식에서 조합 방식으로 선회하는 사업장들이 나오고 있다.
재건축 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7단지는 지난 2월 소유주 투표를 통해 신탁방식에서 조합방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앞서 지난 2023년 10월 코람코자산신탁과 예비신탁사 업무협약(MOU)를 체결한 바 있으나 조합 방식을 선호하는 소유주들이 다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인근 단지인 목동신시가지 6단지도 당초 신탁방식을 검토했으나 조합방식으로 사업 추진을 최종 확정하고 조합 설립을 추진 중이다.
조합 대신 신탁사가 사업비 조달부터 분양까지 전 과정에 참여하는 신탁방식은 지난 2016년을 기점으로 본격 도입됐다.
분양 수익의 2~4% 수준에 이르는 수수료를 대가로 지불하지만 기존 조합 방식에서 문제됐던 운영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고 시공사와의 갈등을 보다 수월하게 조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단지들의 선택을 받았다.
그러나 공사비가 오르고 고금리 현상이 장기화되면서 정비사업 사업성 자체가 악화됨에 따라 사업 추진 동력도 떨어지면서 소유주들이 체감하는 만큼의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서울시 노원구 내 한 재건축 단지 소유주는 “정비사업에 대한 전문성으로 신탁사에서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주길 원했는데 시공사 선정 단계부터 막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특히 최근 신탁사들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도 신탁방식을 선택하기 어려운 점으로 꼽힌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기가 커지며 책임준공형 사업장에서 신탁사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건설사가 기한 내 공사를 마치지 못할 경우 신탁사가 금융비용 등 책임을 떠안게 되는 사업 구조로 인해 부동산 PF 부실 위기가 신탁사로 전이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신탁사들의 적자 경영도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국내 14개 신탁사들의 수익을 합산한 결과 4055억원에 이르는 순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이 같은 여파로 신탁사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재개발·재건축 분야로 사업을 넓히기 어려워졌다는 진단도 나온다.
금융위원회가 오는 7월부터 신탁회사의 토지신탁 취급한도를 자기자본 100% 이내로 제한하는 ‘신탁업 감독규정 개정안’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해당 규제는 신탁사 부실화를 부추기고 있는 책임준공형 토지신탁뿐 아니라 비롯해 정비사업 등까지도 관리 대상에 포함하고 있어 신탁사들이 재건축·재개발 사업 수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어려운 환경으로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정비사업이 지지부진한 것은 신탁방식 실효성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업성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신탁방식이라고 사업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신탁사를 통해 사업의 신뢰성과 안전성을 담보하는 것이 주된 목적인데 여기에 대해 소유주들이 비용 지불 의사가 부족한 것 같다”며 “신탁사의 재무건선성 악화는 책임준공 때문으로 사업이 부실화된 부분을 신탁사로 넘기다 보니 자금사정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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