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이해한 영화 찍어야, 생명력 유지"
배창호 감독이 '배창호 특별전: 대중성과 실험 사이에서'를 통해 시대를 관통한 그의 영화 철학과 내면 세계를 되짚으며 관객과의 새로운 만남을 이어간다.
3일 오전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부비전센터에서는 배창호 감독, 문석 프로그래머가 참석한 가운데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배창호 특별전: 대중성과 실험 사이에서'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이번 특별전은 한국영화사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 배창호 감독의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들을 통해 대중성과 실험성 사이를 고뇌하며 작품 활동을 해온 감독의 삶, 영화 철학, 내면 세계 등을 조명한다. 배창호 감독은 1982년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을 시작으로, '적도의 꽃',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등 작품을 통해 당대 사회의 이면을 성찰하는 시선을 드러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총 4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배창호 감독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4), '황진이'(1986), '꿈'(1990)과 다큐멘터리 '배창호의 클로즈 업'이다. '배창호의 클로즈 업'은 박장춘 감독과 배창호 감독이 감독 본인의 삶을 비롯해 작품 세계와 철학 등을 조명한 작품이다.
배창호 감독은 "이번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미니 특별전을 열어줘서 감사하다"며 "세대가 바뀌는 걸 실감했고, 새로운 관객들과 다시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렘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복원된 세 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배 감독은 "필름 상영만의 장점도 있지만,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통해 기존에 놓쳤던 디테일을 잡아낼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세 편에 대한 소개도 이어졌다. 배 감독은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는 한국전쟁 당시 이산가족이 된 자매의 이야기로, 18편의 제 영화 중 가장 많이 운 작품이다. 이번에도 울지 않고 싶으면 눈물을 흘릴 것 같다. 사연이 너무 가슴 아파 아프다. '황진이'는 서사보다는 주인공의 내면과 미장센에 집중한 영화였다. '꿈'은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서사와 이미지, 내면적인 것이 함께 어우러진 작품"이라며 "세 작품 모두 삶과 인간에 대한 공통된 탐구를 담았지만 결은 모두 다르다”고 설명했다.
신작 다큐멘터리 '배창호의 클로즈업'에 대해서는 "다큐멘터리 제의가 왔는데 인물 다큐멘터리가 자칫 인물을 미화시키거나 왜곡 시킬 수 있어 몇 번 고사했었다. 대화 끝에 내가 아닌 내가 영화를 찍었던 장소를 좁혀서 에세이적으로 담고, 내가 안내자가 되는 방향이 된다면 관객들이 편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아 참여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촬영하며 과거를 많이 돌아봤다. 함께했던 이들에 대한 그리움, 아역 배우들에 대한 고마움이 밀려왔다”며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좋아하던 강원도 설경이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꼈다. 다만 미국의 네슈빌은 40여 년 만에 찾았는데 여전히 그대로라 감회가 남달랐다"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최근 한국 영화계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그는 "지금의 영화는 배경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액션이나 장치로 쓰일 뿐, 자연이 영화의 중요한 출연자로 여겨지지 않는 것 같다”며 “자연은 인간과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영화가 입체적이 된다"고 강조했다.
오랜 파트너였던 고(故) 최인호 작가와 배우 안성기에 대한 애정도 표했다. 배 감독은 "제 말의 대중성을 뒷받침해 주고, 삶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은 분이다. 그분이 쌓아놓은 스토리의 힘이 제 영화에 큰 도움이 됐다"라고 회상했으며 "안성기와는 18편 중 13편을 함께했다. 서로 말을 많이 나누지 않아도 나의 감정을 잘 담아 표현해 주는 배우다. '안성기의 클로즈업'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장면에 등장한다"라고 말했다.
배 감독은 향후 계획에 대해 "15년간 영화를 쉬고 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늘 많았다. 다만 지금은 기업 중심의 영화 제작 환경이라 감독의 창작욕을 존중받기 어려운 시대다. 순응하면서까지 만들 수는 없었다"며 "녹슬지 않은 감성과 이성, 경험과 체력을 잘 관리하며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영화는 생수 같아야 한다. 적당한 감미료는 괜찮지만, 본질은 맑고 진정성이 담겨야 한다"라며 "AI가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는 시대지만, 관객을 울리려면 감독이 먼저 울 수 있어야 한다. 생명력이 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가슴으로 깊이 이해한 것을 찍었으면 한다"라고 후배 영화인들에게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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