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서
한동훈 13%p 차이로 제쳐
"反이재명 강력 연대 구축"
韓 "당원·국민 결정에 승복"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한동훈 경선 후보를 제치고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 올랐다. 김 후보가 당심에서만 우세를 보일 것이란 세간의 예상과 달리 민심에서도 한 후보를 앞서며 약 13%p 득표율 차이로 경선 승리를 거머쥐었다. 김 후보의 압승에는 '한덕수 단일화' 열망에 따른 영향도 있어 보인다. 김 후보는 국민의힘 경선 후보들 중 한덕수 단일화에 가장 열린 태도를 보여온 후보다.
국민의힘은 3일 오후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국민의힘 제5차 전당대회'를 열고 3차 경선 결과 김 후보가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고 발표했다.
국민의힘은 1~2일 당원 선거인단 투표(50%), 국민여론조사(50%)를 합산하는 방식의 3차 경선 투표를 진행했다. 선거인단 투표에는 선거인단 76만4853명 가운데 40만2481명이 참여했으며 최종 투표율은 52.62%다. 여론조사는 역선택 방지를 위해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4개의 여론조사 기관이 각 1500명씩 총 6000명을 표본조사했다.
그 결과 김문수 후보는 선거인단 투표에서 24만6519표, 국민 여론조사에서 51.81%(환산 득표수 20만8525표)로 최종 환산 득표 수 45만5044표, 득표율 56.53%를 기록했다.
한동훈 후보는 선거인단 투표에서 15만5961표, 국민 여론조사에서 48.19%(환산 득표수 19만3955표)로 최종 환산 득표수 34만9916표, 득표율 43.47%를 얻었다.
김 후보는 대선 후보 당선 후 수락연설을 통해 "민주당 이재명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라면 어떤 세력과도 강력한 연대를 구축하겠다"며 "국민과 우리 당원께서 납득할 수 있는 절차와 방식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면서 △2차 연금개혁 추진 △87년 체제 바꾸는 개헌 추진 △선관위 감사 △사전투표제 폐지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등을 약속했다.
김 후보는 당원 투표에서 한 후보보다 9만1558표를 더 얻어냈다. 당원들 표심이 김 후보에게 쏠린 것으로 분석된다. 5선 중진 윤상현 의원은 김 후보 캠프의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달 29일 홍준표 후보가 4강에서 탈락하자 홍 후보를 돕던 유상범·김대식·김위상·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은 곧바로 김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이튿날에는 나경원 의원이 김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인 후보였던 점도 당원 결집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는 다른 국민의힘 경선 후보들 중 한덕수 전 총리와의 단일화에 가장 먼저 긍정적인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국민의힘 내에서 '한덕수 출마론'을 주도한 박수영 의원도 김 후보 캠프의 정책총괄본부장으로 활동 중이다.
김 후보는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한 후보보다 4%p 가량 앞섰다. 민심 확보는 강력한 팬덤을 보유한 한 후보가 유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으나 김 후보는 이를 깨고 더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김 후보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지지율이 더 높았던 건 '당 분열 우려'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 후보가 대선 후보가 되면 일부 당원들이 이탈해 이재명 후보와의 본선 경쟁에서 확연히 불리해질 것이란 예상과 함께, 한덕수 단일화에 대한 기대감이 더해져 김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장성호 정치평론가는 "한 후보가 대선 후보가 되면 당원들이 이탈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민주당은 가장 손쉬운 대선을 치를 수 있다"며 "따라서 당원과 시민들이 전략적으로 김 후보를 선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후보는 이날 전당대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한덕수 전 총리와의 단일화에 대해 "한덕수 후보가 우리 당(국민의힘)에 입당하면 좋은데 (아직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복잡한 문제가 있다"며 "이러한 문제를 충분한 대화를 통해 잘 해결하고,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많은 분들과 손잡고 같이 일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동훈 후보는 이날 승복 연설을 통해 "오늘 당원들과 국민들의 결정에 승복한다"며 "나의 여정은 오늘 여기서 끝나지만 우리의 김 후보가 이 대한민국이 위험한 나라가 되는 것을 막아주실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1951년 경북 영천에서 4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나 판자촌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이후 경북중·경북고를 거쳐 1970년 서울대 상대(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에는 학생운동 모임 '후진국 사회연구회'에 들어가 활동하다 1971년 전국학생시위,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두 차례 제적되면서 25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김 후보는 제적된 이후 1972년부터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재단보조공으로 일을 하고, 위장 취업으로 전국금속노조 한일도루코에 입사해 노조위원장을 지내며 노동 운동에 깊숙이 뛰어들었다. 그러다 1990년 초 구소련의 붕괴를 지켜보며 보수로 전향했다.
김 후보는 이재오·장기표 전 의원 등과 1990년 창당한 민중당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고 1994년 김영삼 민주자유당(국민의힘 전신) 총재의 권유로 입당했다. 이후 1996년 15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제도권 정치를 시작했다. 15·16·17대 연이어 3선에 성공했고 경기도지사 연임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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