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정보보호 투자 미흡 등 리스크 대비 부족 변명의 여지없어
변명·해명보다 '유심 100% 무료 교체' 앞세운 사후 대응은 긍정적
'위약금 면제' 압박 거세지만, 수용시 형평성 논란…사후 대응 마지막 관문
SK텔레콤(SKT) 유심 해킹 사태의 파장이 3주째 이어지고 있다. 가입자 개인정보의 유출과 악용 가능성은 접어 두더라도 SKT의 브랜드와 보안 역량을 믿고 개인정보를 맡긴 가입자들에게 일말의 찜찜함이라도 남긴 것은 변명의 여지없이 회사의 잘못이다.
더구나, 가장 많은 가입자를 끌어안고 있으면서도 정보보호 투자는 3사 중 가장 적었다는 건 비난 위에 비난을 얹을 만한 사안이다. 사고가 터지지 않는다면 써봐야 티 안 나는 돈이라고 아끼다가 그 몇십 배의 비용 손실을 떠안게 됐으니 자승자박이다.
일단 사고가 터지지 않도록 대비하는 부분에서는 낙제점이다. 그렇다면 사고가 벌어진 상태에서 사후 대응은 어떠한가.
어떤 기업에서든 불미스런 사태는 발생한다. 그게 대놓고 저지른 잘못이든 외부 요인으로 인한 불가항력적 상황이든 리스크로부터 100% 자유로운 기업은 없다. 그래서 리스크 대비 못지않게 중요한 건 사후 대응이다.
기업의 잘못으로 어떤 손해나 불편을 떠안았다고 해서 당장 사업을 접고 기업을 청산해 소비자들에게 나눠주고 전 임직원은 실업자 신세가 되는 정도까지의 극단적 철퇴를 원하는 소비자는 없을 것이다. 기업이 사고를 칠 때마다 그런 식으로 결론이 난다면 우리나라에 남아나는 기업이 있겠는가.
어떻게 피해를 최소화하고 적절한 보상을 제시해 소비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느냐에 따라 비난의 화살은 점차 무뎌질 수 있다. 그만큼 사후 대응은 중요하다.
지난 20여년간 여러 기업들을 취재하며 겪은 바로는, 사고를 치는 기업들의 사후 대응 방식에는 일종의 루틴이 있다.
처음엔 해명(혹은 변명)을 앞세운다. 자신들의 잘못을 축소하고 ‘별 일 아니다’며 둘러대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 잘못한 것보다 더 많이 욕먹는 게 진짜 억울해서 사실관계를 설명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뭘 잘했다고 변명이야.” 연인 관계를 비롯한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빚어질 때 흔히 등장하는 말이다. 기업과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다음엔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합리적인, 하지만 소비자가 보기엔 터무니없는 대책, 혹은 보상 방안을 내놓는다. 이 역시 보통은 욕을 먹는다. “어디서 돈 아끼려고 짱구를 굴려.”
결국 욕 덜 먹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막으려다가 신나게 두들겨 맞고 결국엔 쓸 돈은 다 쓰게 된다는 새드 엔딩이다.
이 루틴대로라면 SKT는 초기에 ‘유심 정보가 유출됐지만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은 낮다’는 기술적 해명을 앞세운 뒤 ‘유심보호서비스 가입’을 대책으로 내놓고 그것만으로도 개인정보 보호는 충분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어야 했다.
이후 비난의 파도에서 허우적대다 경영진이 국회로 끌려가 면박을 당한 뒤에야 유심 100% 무료교체라는 방안을 내놓는 것. 이게 20년 내공으로 예상했던 전개였다.
하지만 SKT의 움직임은 좀 특이했다. 사태 초기부터 유심 100% 무상 교체 카드를 내놨다. 이걸 급하게 발표하면서 유심 물량이 부족해 가입자들을 매장 앞에 줄세워 놓고 고생시키는 상황을 초래했지만, 물량 부족을 이유로 무상 교체 지원을 미뤘다가는 꼼수 부린다고 더 큰 욕을 먹었을 수 있다. 분노한 소비자는 그다지 이성적이지 않다.
유심보호서비스 가입만으로도 정보 유출에서 충분히 안전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유영상 대표를 포함 주요 경영진과 심지어 최태원 SK그룹 회장마저도 유심 교체 없이 유심보호서비스만 가입했다고 한다.
일부 전문가들로부터 이번에 해킹을 당한 것으로 확인된 홈가입자서버(HSS)에는 개인정보와 단말기식별번호가 없고, HSS 해킹만으로는 금융자산 탈취나 문자·연락처·앱 복제 등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SKT가 직접 나서 해명하지는 않는다. 특정 사안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 답변이나 내놓는 정도다. 이 스탠스는 아마도 통신당국의 조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기업의 사후대응 루틴을 거스른 SKT의 행보가 어떤 결론을 낳을지는 알 수 없다. SKT의 유심 해킹 사태는 아직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다만 SKT 장기가입자이자 이번 해킹 사태로 누구 못지않게 분노했던 한 사람으로서, 회사측의 이번 대응은 합격점 까지는 아니더라도 커트라인 상단까지는 줄 만 하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사전 대비는 낙제점이었다.
현재 SKT는 ‘위약금 면제’ 압박을 받고 있다. 약정 할인 가입자가 다른 이동통신사로 이동시 위약금을 면제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이 사안은 애초에 회사측에서 선제적으로 제시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단말기 대금 등을 지원 받은 대가로 일정 기간 가입을 약정한 가입자에게 위약금을 면제해줄 경우 일반 가입자들과 형평성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유심 해킹 문제와 별개로 위약금 없이 ‘신상 스마트폰’으로 갈아타기 위해 통신사를 옮기는 가입자가 폭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짜’ 혜택을 이용해먹지 않으면 바보 되는 세상 아니던가. 이런 식으로 대규모 이탈이 이뤄지면 SKT뿐 아니라 개인사업자인 대리점주들까지 큰 피해를 입는다.
대중의 지지를 먹고 사는 정치권에서는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든 SKT를 압박해 위약금 면제 요구를 관철시키려 할 가능성이 높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오는 8일 ‘SK텔레콤 단독 청문회’를 열기로 하고 최태원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위약금 면제’ 압박은 이번 유심 해킹 사태 사후 대응에 있어 SKT가 넘어야 할 마지막 관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 SKT의 사후 대응 능력의 최종 성적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원활히 해결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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