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밴드 게스이도즈' 우가나 켄이치 감독이 밀하는 비주류의 미학 [26th JIFF]

데일리안(전주) =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05.05 14:16  수정 2025.05.05 14:16

"차기작 네 편 이미 완성"

우가나 켄이치 감독의 영화 '록 밴드 게스이도즈'는 장르와 스타일, 인간 군상을 뒤섞은 독창적인 실험극이자, 펑크의 정신을 카메라로 옮겨놓은 작품이다. '록 밴드 게스이도즈'는 일본 시골 마을로 이주한 사회 부적응자들이 모인 펑크 록 밴드가 최고의 찬가를 만들기 위해 모인 이 기묘한 여정을 다룬 영화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전작들에서부터 판타지와 호러, 음악을 넘나든 우가나 감독은 이번에도 실제 음악 혹은 연기 경험이 없는 이들을 캐스팅해 예측불허의 리듬을 만들어냈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시네마천국 섹션에 초청된 이 작품은 작품은 감독이 10년간 축적해온 장르 실험의 총체로, 개러지 록의 자유로운 태도와 호러의 비정형성을 빌려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에너지를 포착했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이어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우가나 감독은 한국 관객들을 만날 생각에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 전주라는 공간에 대한 기대, 그리고 자신의 영화를 관객과 함께 나누게 된 감흥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전주국제영화제의 존재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작품이 이 자리에서 상영된다는 사실에 정말 기쁘고 감격스럽습니다. 제가 한국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서 영화제를 직접 찾아가 본 적도 있고, 알고 지내는 한국 감독님들도 몇 분 계세요. 그런 인연이 이어져 이번에 전주에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주에 도착하자마자 도시 곳곳에서 활기를 느껴지네요. 영화의 거리도 지나왔는데, 그 길을 걸으면서 '아, 이분들이 제 영화를 보러 와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순간이 굉장히 벅찼습니다."


록과 펑크에 대한 애정은 이번 작품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기존에 제작이 무산됐던 밴드 영화를 다시 꺼내 들게 된 건, 음악적 취향이 잘 맞는 동료와의 만남 덕분이었다.


"이번 영화를 만들게 된 건, 스미나 PD님과의 만남이 계기였습니다. 처음엔 뭘 해볼까 고민하던 중, 저희 둘 다 록과 펑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고, 자연스럽게 밴드 이야기를 해보자고 의견이 모였습니다. 사실 제 첫 장편 이전에도 밴드를 주제로 한 영화를 구상한 적이 있었지만, 그땐 제작이 무산됐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꼭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우가나 감독의 작업 세계는 늘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판타지에서 호러, SF까지 다양한 시도를 이어온 그는, 이번 작품에 지난 10년간의 실험과 감각을 응축하겠다는 각오를 담았다.


"지난 10년간 장편 영화 15편을 만들며 판타지, 호러, SF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해왔습니다. 이번 영화는 그 시간 동안의 모든 시도와 경험을 하나로 모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호러와 펑크를 결합하게 된 건 단순히 제가 그 장르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장르 속 인물들이 대부분 주류에서 벗어난, 사회의 주변부에 있는 존재들이라서 더 끌렸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그런 인물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거든요."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이번 영화의 캐스팅은 전통적인 의미의 '배우'를 찾는 과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감독은 오히려 연기나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일부러 모아 밴드를 구성했다.


"하나코 역을 맡은 배우 나츠코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배우지만 밴드 경험이 없어요. 기타리스트 마사오 역의 이마무라 레오는 밴드를 하지만 사실 포지션은 보컬리스트입니다. 연기 경험은 없고요. 베이스를 했던 류조는 칸 류탸카라는 배우가 연기했어요. 그는 에어밴드 경험은 있지만 실제 밴드 활동이나 연기 경력은 거의 없는 상태였죠. 드럼을 맡은 산타로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감독이에요.(웃음) 음악 연주보다는 연출에 가까운 활동을 해온 인물이죠. 모두가 각자의 역할에 대해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들이 함께 모였을 때 어떤 효과가 생길지를 기대했습니다. 저 자신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긴장된 공기를 즐겼고, 이들의 진짜 그루브가 맞을지 아닐지조차 모르는 그 상태를 영화에 담고 싶었습니다.”


영화 곳곳에는 우가나 감독의 사적인 기억과 정서가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영화에는 제 개인적인 기억도 조금 담겨 있어요. 어릴 적 유치원을 하루 다니고는 등원을 거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부모님이 장 보러 가실 때 따라다녔죠. 보상처럼 비디오를 빌려 보곤 했는데, 어머니가 호러 영화를 정말 좋아하셔서 자연스럽게 저도 같이 보게 됐어요. 그런 기억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영화 속엔 저희 할머니 캐릭터도 나오는데 할머니와의 기억을 담았습니다. 실제로 할머니는 제가 영화를 만들면 늘 보러 오시지만 '뭔지는 잘 모르겠다'라면서 먹을 걸 챙겨주시거든요. 음악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재미있게 봤다며 무언가를 건네는 장면이죠."


시골 마을이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된 이유는 밴드의 형성과정, 그리고 음악이 태어나는 물리적·정서적 환경까지 함께 그려내기 위한 설정이었다.


"시골을 배경으로 한 건 개러지 락 같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도쿄에서는 그런 창고 공간을 찾기 어렵고, 밴드 멤버들이 함께 먹고 자며 생활하는 모습도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시골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시골 풍경 자체가 일본적인 감성을 잘 드러낼 수 있기도 하고요."


영화 속 음악은 인물의 감정선이자 이야기의 중심 축이며, 때로는 또 하나의 주인공처럼 기능한다. 우가나 감독은 처음부터 음악이 대사의 역할을 하도록 설계하며, 음악이 이야기를 이끌도록 각본을 구성했다.


"음악 작업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음악은 듣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탄생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사는 줄이고, 음악이 곧 대사가 될 수 있도록 구조를 짰습니다. 음악은 출연자이기도 한 이마무라 레오 씨와 작곡가 큐오너 씨가 작업해 주셨습니다. 저는 음악 지식이 많진 않지만, 이미지나 분위기를 두 분께 전달드렸고, 그걸 아주 잘 구현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멤버들이 실제로 연주한 장면도 그대로 담았고, 실수한 연주조차도 그대로 살렸습니다."


관객 모르게 슬쩍 화면에 등장하는 감독의 깜짝 출연도 영화 속 숨은 재미다.


"클럽 공연 장면에선 제가 직접 출연해서 점프도 하고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습니다. 팬의 입장에서 무대 아래에서 음악을 응원하는 느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록 밴드 게스이도즈'는 장르와 형식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정답 없는 창작의 즐거움을 드러낸다. 우가나 감독은 관객 역시 이 영화와 마주할 때 정해진 해석이나 의미에 얽매이기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이번 영화에 명확한 메시지를 담으려 하진 않았습니다. 관객들이 자유롭게 받아들이셨으면 좋겠어요. 단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뭔가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겁내지 말고 도전해 보셨으면 합니다. 꼭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자유롭게 즐기면서요."


우가나 감독의 실험은 올해도 계속된다. 이미 네 편의 작품이 완성돼 있다.


"차기작 네 편 중 세 편은 올해 안에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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