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새벽 '선출 취소' '강제 단일화'
김문수 선출 취소하고 한덕수 단독 등록
10일 전당원투표, 11일 전국위에서 지명
"교황 선출보다 어려웠다…상처 꿰매야"
국민의힘 대선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내홍이 정당사(政黨史)상 초유의 '새벽의 선출 취소'와 '후보등록 신청접수'로 번졌다. 전당원투표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보완한다지만, 단일화를 둘러싼 내홍과 그 과정에서 노정된 비상식적 모습들로 인한 당원과 지지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대선을 불과 24일 남긴 상태에서 '원팀'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주 고난도의 정치력이 요구된다는 관측이다.
국민의힘은 10일 0시를 전후해 비상대책위원회와 당 선거관리위원회를 잇달아 열어 김문수 후보의 대선 후보 선출을 취소하고, 새롭게 대선 후보 등록 신청을 받는 절차 등을 진행했다. 전날 밤 진행한 김문수 후보와 한덕수 후보 간의 단일화 실무협상이 접점을 찾지 못함에 따라, 결렬됐다고 판단하고 이른바 '강제 단일화' 절차에 돌입한 것이다.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한 국민의힘은 이날 새벽 3시부터 4시까지 1시간 동안 국회본청에서 당의 새로운 대선 후보 등록을 위한 신청 서류를 접수 받았다. 접수 결과, 이날 새벽에 국민의힘 책임당원으로 입당 절차를 완료한 한덕수 후보가 단독으로 후보로 등록 신청을 완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이날 하루 동안 진행될 전당원 투표는 한덕수 후보를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하는 것에 대한 찬반을 묻는 형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당원 투표자 중 과반이 찬성해야 한 후보를 선출할 수 있다.
이후 선관위원회의와 비대위원회의를 다시 열어 전당원 투표 결과를 확인한 뒤, 이튿날인 11일 오전 전국위원회를 열어 전국위원 과반 찬성으로 한덕수 후보를 국민의힘의 최종 대선 후보로 지명하는 절차를 밟는다. 11일이 중앙선관위 대선 후보 등록 2일차이자 마지막날이므로 한 후보는 오전에 국민의힘 최종 대선 후보로 확정되면, 그 즉시 중앙선관위에 대선 후보로 등록할 것으로 보인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김문수 후보를 지지하는 전국위원이나 여타 세력이 최종 후보 지명을 확정하는 절차인 전국위원회의에서 난동을 부리거나 물리적으로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전국위는 비대면 방식으로 열리며 전국위원 투표도 ARS 전화투표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빅텐트'가 아닌 '라이트 텐트' 우려에
끝내 '강제 단일화' 결행할 수밖에 없었다
김문수, 황교안·광장세력 통합 대상 거론
"민주당처럼 극단 세력에 잡아먹힌다"
국민의힘이 대선을 불과 24일 앞두고 사상 초유의 '강제 단일화'를 끝내 결행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으로는 대선 승리와 향후 당의 존립을 위한 노선 정립 문제가 꼽힌다. 대중 정당으로서 존립하기 위해서는 '빅텐트'를 치고 중도 외연 확장을 해야 하는데, 김 후보가 대선 과정에서 '라이트 텐트(Right Tent)'를 치면서 당을 역주행으로 이끌까봐 다소간의 무리수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김문수 후보가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지난 3일 저녁, 김 후보와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이양수 사무총장 등이 마주한 자리에서 김 후보도 '조속한 단일화' 요구에 충격받았지만, 국민의힘 지도부도 김 후보가 거론한 단일화 대상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김 후보는 당시 황교안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를 단일화 대상으로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에서 "나라가 위험할 때는 의병이 일어나듯이 광장에서 나라를 구하는 분들과 손잡아야 한다"며 "바깥에서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희생하는 분들에 대해 제대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이른바 '아스팔트 극단 우파' 세력을 국민의힘 당내로 끌어들이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불러일으켰다.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에 관한 우려가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전날 의총 직전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정통 민주 야당이던 민주당에 극단 세력들이 들어가 결국 잡아먹혔듯이, 정통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도 극단 세력에 의해 장악당할 수 있다"며 "당장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와 대결할만한 인물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못하다가 당이 극단화되면 이후의 존립과 영속까지도 보장하지 못한다"고 염려했다.
이에 의원총회에서는 이례적으로 64명의 의원이 표결 절차까지 거쳐, 60명의 의원이 대선 후보 교체까지도 포함한 권한을 지도부에 일임하는데 동의하는 결과가 도출됐다. 이러한 설명대로라면 김 후보의 선출 취소와 함께 새로운 대선 후보 신청 접수에 나선 것은 당의 극단화를 저지하기 위해 극단적 수단을 결단할 수밖에 없었던 일종의 '방어적 민주주의'의 발동이라는 것이다.
김문수, 선출 취소 '원천 무효' 미리 선언
법적 대응 하면서 선관위 등록 시도할 듯
당내 혁신계 조경태·배현진도 문제제기
"새벽에 선출 취소, 말도 안되는 상황"
정당사상 초유의 '강제 단일화'인 만큼, 그 과정에서 당에 남은 상흔이 아주 큰 상황이다. 당장 선출을 취소당한 김문수 후보의 강력한 반발은 불문가지라고 할 수 있고, 당내 혁신파 의원들도 문제제기를 할 기세다.
김 후보 측은 전날 단일화 실무협상 과정에서 이미 선출 취소를 하더라도 '원천 무효'라고 미리 선언해뒀다. 선출 취소에 대해 법원에 재차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법적인 대응에 나서면서, 10~11일 후보등록 기간 동안 선관위에 후보 등록 시도를 할 것으로 보인다.
'친한(친한동훈)계의 좌장'이라 불리는 6선 최다선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새벽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가 나자 "이 한밤 중에 대선 후보 선출 취소 공고를 냈다. 이는 지극히 비상식적"이라며 "국민이 잠든 새벽 시각에 불과 국회의원 62명의 찬성을 빌미로 당원과 국민이 참여한 대선 후보의 선출을 전격 취소한 것은 명백히 대국민 사기극이며 쿠데타"라고 날을 세웠다.
아울러 한덕수 후보의 전격 입당과 후보 단독 등록을 향해서도 "살다살다 새벽에 입당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입당한지 1일만에 100석이 넘는 정당의 대선 후보가 되는 신기록 보유자가 되려 한다"고 꼬집었다.
혁신계로 분류되는 배현진 의원도 "경선을 통해 최종 선출된 후보를 모두 잠든 새벽에 기습 취소시키고 03~04시, 단 1시간만에 어마무시한 양의 서류들을 준비해 국회에서 새 후보로 등록하라는 말도 안되는 상황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라며 "눈뜨고 있던 내가 이리 황당한데, 밤새 잠들어있던 당원·국민들과 경선 결과에 승복했던 후보들이 아침에 맞닥뜨릴 당혹감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고 개탄했다.
한덕수, 리더십·정치력 본격 시험대 섰다
"나는 외부 용병 아냐, 3년 싸워온 동지"
김문수·한동훈·홍준표 등 이름 열거도
국민의힘 지도부도 오전 11시 입장 발표
이에 따라 한덕수 후보와 국민의힘 지도부의 어깨가 아주 무거워졌다는 분석이다. 평생 관료로 살아온 한 후보는 내홍 과정에서의 상흔을 추스르고 '원팀' 대선 전열을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 과정에서 본인의 리더십과 정치력이 첫 시험대에 서게 됐다는 관측이다.
한덕수 후보는 이날 새벽 국민의힘 책임당원으로 입당하면서 "나는 어느날 갑자기 외부에서 온 용병이 아니다. 지난 3년간, 야당의 폭주에 맞서 국정의 최일선에서 여러분과 함께 싸워온 동지"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나의 목표는 단 하나, 여기서 기적이 끝나선 안된다는 것, 대한민국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이것밖에 없다. 그것이 국민의 뜻이고 당원 동지 여러분의 뜻이라고 믿는다"며,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 고배를 마시거나 선출을 취소당한 김문수·한동훈·홍준표·안철수 후보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우리 당의 모든 후보들과 지지자 분들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믿는다"고 다독였다.
국민의힘 지도부도 이날 오전 11시 국회에서 후보 재선출을 하게 된 과정과 향후 절차에 대해 언론 브리핑을 진행한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입장을 발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교황 선출보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출이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라며 "후보 확정 과정에서 많은 상처가 있었는데, 이것이 영원히 찢겨진 채로 남지 않으려면 한덕수 후보와 지도부가 아주 노련한 바느질 솜씨를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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