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에 몰래 넘어간 반도체 기술…"기술유출에도 간첩죄 적용해야"

황인욱 기자 (devenir@dailian.co.kr)

입력 2025.05.09 03:21  수정 2025.05.09 03:21

중국 기업 이직 제안에 기술자료 수집해 유출

삼성전자 작년 추정 매출감소액 수조원 추정

간첩죄 적용 북한에 한정…상대적으로 낮은 형량

작년 간첩법 개정안 추진 민주당 반대로 무산

검찰이 국내 반도체 기술을 중국 기업에 넘긴 혐의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전 직원을 구속기소했다.(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검찰이 국내 반도체 기술을 몰래 중국 기업에 넘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전 직원을 연달아 붙잡아 재판에 넘겼다. 산업스파이 관련 범죄가 활개치며 개별 기업의 경제적 타격을 넘어 국가 산업경쟁력 약화와 안보 위협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 반도체 기업에 취업한 중국인들이 핵심 기술을 훔쳐 현지 기업에 빼돌리는 사례 등도 잇따라 적발되고 있어 산업기밀 유출에도 간첩죄 적용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최근 일주일 새 산업기술보호법 위반(국가 핵심 기술 국외 유출) 등의 혐의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 직원을 구속기속했다. 이들은 중국 기업으로 이직하는 과정에서 국내 기업의 핵심 반도체 기술을 넘기는 대가로 경제적 이득 등을 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정보기술범죄수사부(부장 안동건)는 SK하이닉스 전 직원 김모(51)씨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김씨는 중국 화웨이의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으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은 뒤 이직에 대비해 반도체 공정 관련 기술자료를 수집했다.


김씨가 불법적으로 취득한 기술은 CIS(CMOS 이미지 센서) 관련 미세 소자 제조기술과 인공지능(AI) 반도체에 활용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관련 핵심기술 등이다. 그는 지난 2022년 SK하이닉스 중국 주재원으로 근무 당시 이미지 센서와 관련한 반도체 첨단기술과 영업비밀 1만1000여장을 출력하거나 촬영하는 방식으로 무단 확보했다.


앞서 정보기술범죄수사부 지난 2일에는 삼성전자 전 엔지니어 전모(55)씨를 재판에 넘겼다. 전씨는 삼성전자가 1조6000억원을 들여 개발한 18나노 D램 공정 정보를 중국 반도체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로 무단 유출한 혐의를 받는다. 해당 유출 건으로 삼성전자의 2024년 매출감소액은 수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씨는 단순 정보만 넘긴 것이 아니라 범행을 적극적으로 주도하기까지 했다. 그는 CXMT로 이직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공정기술을 빼돌리고, 핵심인력 20여명을 영입해 회사에 타격을 입혔다. 또 위장회사를 통해 CXMT에 입사하고 체포당할 경우를 대비해 암호를 전파하는 등 수사망을 피하기 위한 주도면밀한 모습도 보였다.


전씨는 삼성전자의 기술 정보를 넘겨주고 D램 반도체 개발계획을 수립한 대가로 CXMT로부터 사인온 보너스(sign-on bonus·신입직원 상여금) 3억원, 스톡옵션(stock option·주식매수선택권) 3억원 등 약 6년 간 29억원 상당을 지급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범행은 단독범행은 아니며 다수의 삼성전자 전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이 개입한 점이 특히 충격적이다. 지난 2월 전씨와 공범이면서 재판에 먼저 넘겨진 삼성전자 전 직원 김모(57)씨의 경우 1심에서 징역 7년과 벌금 2억원을 선고 받았다. 검찰은 현재 삼성전자의 기술 자료를 유출한 또 다른 공범에 대해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를 통해 추적 중이다.


검찰은 국내 반도체 기업의 핵심 기술을 중국 회사로 넘기는 산업기술 유출 범죄가 끊이지 않자 관련 수사를 강화해 왔다. 이에 산업스파이 혐의와 관련해 다수의 사건이 재판 진행 중인 가운데 중국인 직원이 기술을 훔치는 사례도 있다.


전날 수원고등법원 형사2-1부(김민기 김종우 박광서 고법판사)는 SK하이닉스 전 직원 A(37·중국 국적)씨의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원심인 징역 1년6월 및 벌금 2000만원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5년 및 벌금 30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2013년 SK하이닉스에 입사한 뒤 2022년 고연봉을 받고 중국 화웨이로 이직하는 과정에서 반도체 공정 문제 해결책과 관련한 자료를 A4 용지 400여장 분량 출력하는 등의 수법으로 회사 기밀을 유출했다.


산업기술 유출 범죄가 끊이지 않자 검찰이 관련 수사를 강화하고 있다.(자료사진) ⓒ연합뉴스

이처럼 국내 반도체 핵심 기술이 중국 기업에 몰래 넘겨지고 있으나 국가 기술경쟁력 악화에도 상대적으로 낮은 형량이 적용되고 있다. 현행법상 간첩죄 적용 대상은 적국(북한)에 국한돼 있어 중국인의 간첩 행위는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형법 98조의 간첩죄 적용 범위를 '적국'에서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확대하는 법 개정이 국민의힘 주도로 작년에 추진됐으나 민주당 지도부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산업기술 유출 외에도 중국인들이 국내에서 군부대 등을 무단으로 촬영한 사건이 작년 6월부터 최근까지 11건이나 발생하며 간첩법 개정의 필요성이 계속해 제기되는 만큼 간첩죄 확대 논의는 국회를 중심으로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성권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경제간첩의 활동과 입법적 대응을 모색하는 정책토론회에서 "현행 간첩법은 간첩을 못 잡는 빛 좋은 개살구 법으로 전락했다"며 "국회는 더이상 뭉개지 말고 대한민국 안보의 기초체력인 간첩법을 개정하고, 경제안보 입법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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