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가톨릭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출신의 교황이 탄생했다. 미 일리노이주 시카고 태생의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69) 추기경이 267대 교황으로 선출되며 ‘레오 14세’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가톨릭에서 ‘레오’는 라틴어로 ‘사자’를 뜻한다. 이름이 주는 이미지처럼 강인함과 용기, 리더십을 상징한다.
특히 레오 14세는 최초의 미국인 교황이라는 점에서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교황직은 오랜 세월 동안 ‘초강대국 출신 배제’라는 규칙을 암묵적으로 지켜온 까닭이다. 미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국 교황 탄생이 ‘불가능’했던 것은 ‘교황직의 정치적 중립성’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미국은 정치·경제·군사 분야에서 세계적 패권국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교황직까지 미국인이 거머쥘 경우 가톨릭 교회가 특정 국가의 영향력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미 CNN방송은 “이번 선출은 이 같은 금기를 정면으로 깬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NYT는 "바티칸은 줄곧 교황이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이자 중재자라는 상징성을 유지하기 위해 수퍼파워 국가 출신은 배제해왔다"고 지적했다. 미 공영방송 PBS는 “교회가 미국 중심주의로 기울 수 있다는 불신이 오랫동안 교황직에서 미국인을 배제해 온 배경”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 수년간 미국 정치가 극단적 양극화 양상을 보이면서 미국 출신 교황이 취임할 경우 교황청이 미국 내 정치논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우려돼 왔다. 새 교황 레오 14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과 J D 밴스 부통령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적이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레오 14세 교황은 소셜미디어(SNS)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출신 이주민을 대거 갱단이라며 엘살바도르의 악명 높은 교도소 세코트로 보낸 사건에 대해 “고통이 보이지 않나요?”라는 다른 작가의 글이 공유한 바 있다. 다만 계정의 진위를 확인 중에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NYT 역시 새 교황은 SNS를 통해 2020년 경찰에 의해 사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대해 “상심하고, 역겹고, 분노한다”는 내용의 미국 주교 7명의 서명한 성명을 공유하고, 여성의 임신중지 권리를 반대하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비판하는 기사를 공유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이를 극복하고 교황에 등극했다. 이는 그가 미국 국적 외에도 페루 시민권을 갖고 있고 20여년 간 중남미 선교 활동을 하며 가난한 이주민을 위해 헌신한 고(故) 프란치스코 교황과 닮은 데다, 내성적이고 신중한 성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점 등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NYT는 "그는 미국인이지만 몇십 년간 미국 가톨릭 교회의 주류와는 거리를 둬 온 인물"이라며 "교황청은 그를 미국인이라기보다는 가톨릭 글로벌리스트로 봤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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