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의 복귀, 김대중이 떠오른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05.12 07:07  수정 2025.05.12 07:07

단일화 약속으로 경선 승리 사실, ‘교체 쿠데타’ 역풍으로 부활

‘5월 10일 전까지 완료한다’ 해놓고 생트집 잡으며 돌변

김대중 지지자들, ‘슨상님’보다 ‘후보님’ 호칭 더 자랑스러워해

후보직 뺏길 뻔한 최악의 번복...다 된 ‘성공한 인생’ 밥에 코

제21대 대통령 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2일 오전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서울 송파구 양재대로 가락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인사하고 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김문수가 극적으로 생환했다. 국민의힘 쌍권(권영세+권성동) 지도부의 야밤 강제 후보 교체 ‘쿠데타’가 부른 역풍이다.


그러나 그 쿠데타 원인 제공의 절반 이상은 그 자신이 제공했다. 그가 어느 경선 후보들보다 먼저, 가장 확실하게 단일화 약속을 함으로써 1등이 됐다는 건 천하가 아는 사실이다.


그는 이것을 당선되자마자 엎어 버렸다. 모두가 알고 있던 김문수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교훈을 그가 남기고 있다


정치인은 상황에 따라 표변, 돌변할 수 있고 그들의 말을 절대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김문수는 상황이 변해서 마음이 바뀐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그럴 마음으로 나섰다고 볼 수밖에 없다.


윤석열 파면 결정 전인 2월 초 그는 자기 지지율이 급상승하고 있는데 대해 처음으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지지율이 왜 높은지) 모르겠다. (대선 출마를) 전혀 검토하거나 생각한 것이 없다. 국민들이 답답하니까 아마 그렇게 응답하는 것 같다. 제가 특별히 한 일은 없고 상식적인 이야기를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가 참으로 보수다웠다. 출마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놓았다.


“탄핵 재판과 계엄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은 존재하겠지만 아직 단정할 수 없다. 지금 출마 얘기를 하면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저 자신의 양심에도 맞지 않는 발언이 된다.”

이랬던 그가 두 달 후 국민의힘 유력 잠룡 중 가장 먼저 출마 선언을 했다. 그가 나올 것이라고 보는 예측이 다수였지만, 혹시 끝까지 사양할 수도 있다고 본 이들이 적지 않았다.


“탄핵 국면에서 많은 국민 여러분께서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셨다. 이제는 저에게 내려진 국민의 뜻을 받들기로 했다. 대통합이든 대연정이든 나라가 잘되는 일은 무엇이든 해야 한다. 이제 새로운 전진을 시작하겠다.”

누워서 식은 죽 먹기 같았던 그의 당내 경선 완승 예상은 윤석열 파면과 함께 본격 대선판이 벌어지자 지지율이 하락, 박빙 승부로 변했다. 한덕수 출전에 대한 기대감도 당원들 사이에 높아졌다. 그와 캠프 측근들은 여기서 작전을 짰다.


단일화를 경선 구호로 내세우는 것이었다. 다른 4강 후보, 한동훈-홍준표-안철수에 비해 김문수만 유난히 단일화를 통 크게 외쳤다. 뭐가 표를 모으게 될 것인지 그들은 알았다.


“한덕수 권한대행이 대선 출마를 도전한다면 5월 10일이 후보자 등록일인 만큼 그전에 단일화와 통합 작업을 완료할 생각이다. 홍준표, 한동훈 후보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다가 단일화 여론이 커지자 최근에 와서야 돌아섰다. 단일화를 위한 진정성과 추진력에 있어 저 김문수가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그는 이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거짓말한 게 틀림없지 않은가? 그가 이렇게 말했을 때 한덕수가 무소속 후보가 될 것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가 ‘천 원짜리’ 당비 한 푼 안 낸 사람인 것도 다 알았다. 그런데, 경선에서 이기고 나니 “어디서 난데없이 나타나 단일화를 하라 마라 한다”라고 생트집을 잡았다.


김문수는 이 표변과 돌변으로 자기 말을 먹어 버리는(食言) 후안무치한 한국 정치인의 전형을 보이고 말았다. 서울대 나온 운동권 출신의 진보적 소신파 보수, 고문에 굴하지 않고 내부자 명단 공개를 끝내 거부한 절개, 탄핵 사과 절을 강요한 야당 의원의 ‘직권 남용’에 맞선 꼿꼿한 이미지도 이 거짓말과 번복으로 깨끗이 날려 보냈다.


그의 말과 후보 타이틀 애착은 김대중과 여러 가지로 닮았다. 김대중의 거짓말과 번복은 여기서 되풀이 인용할 필요 없을 만큼 유명하다. 그는 제1 야당 ‘대통령 후보’라는 명함을 끔찍이 아끼고 자랑스러워했다.


그의 충직한 측근들과 ‘슨상님’ 지지자들이 특히 그랬다. 필자는 1980년대 초 시국 집회에서 그를 1971년 대선 후 10년이 지난 그때까지도 ‘후보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봤다. 그에게 슨상님보다는 후보님이 더 명예로운 호칭이라고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경제를 일으켜 세워 배고픔을 해소하고 있던 ‘위대한 영도자’ 박정희와 맞짱 뜬 것만으로도 큰 영광으로 여긴 것일까?


김문수는 이런 김대중보다 더 ‘알량한 후보 자리’(권성동)를 지키려 했으니 한심하다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은 단일화 같은 꼼수 약속 없이 95만표(8%P) 차로 졌으나 김문수는 (당원 지지율이 월등히 높았던 한덕수로의) 단일화 마음이 전혀 없었으면서도 단일화 의지를 천명하는 ‘술책’(권영세)으로 후보가 됐다.


그의 극적 후보 복귀는 지지율이 아닌 한밤 강제 후보 교체 난장판, 그리고 한동훈-홍준표-안철수가 경선 탈락 분풀이하듯 일제히 지도부의 한덕수 띄우기에 십자포화를 퍼부은 뒤 이뤄진 ‘한덕수 후보 찬반’ 투표의 결과다. 이것이 그 탈락 경선 후보들과 당, 보수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는 한 달 후 알게 될 것이다.


이로써 국민의힘은 조기 대선 패색이 한층 더 짙어졌다고 보는 게 여론조사 수치로 볼 때 현실적인 예측이다. 그리고 국힘 당은 이제 김문수와 예전부터 관계가 깊고, 이번 대선 국면에서 그를 적극 지지하고 있는 광화문 아스팔트 세력과 특정 종교 집단이 접수할 수도 있게 됐다. 김문수의 당무 우선권 발동에 의해서다.


김문수는 ‘후보님’ 호칭을 지키려고 다 지은 ‘성공한 인생’ 밥에 코를 풀었다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20일 후에도 역전승하는 기적을 이뤄내야만 한다.

글/ 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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