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족 독립을 요구하며 튀르키예 정부와 맞서 무장투쟁을 이어온 쿠르드노동자당(PKK)이 조직을 해체하겠다고 공식 천명했다. 종신 집권을 추구하며 ‘21세기 술탄’으로 군림하고 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PKK는 12일(현지시간) 지도부 회의 후 성명을 통해 “PKK를 해체하고 무장투쟁 방식을 끝낼 것”이라고 밝혔다. 1978년 PKK가 쿠르드족 독립 국가 건설을 위해 무장투쟁에 나선 지 47년 만이다.
PKK는 이어 “우리의 투쟁은 우리 민족을 부정하고 말살하는 정책을 무너뜨리고, 쿠르드족 문제를 민주적 정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지점까지 끌어올렸다”며 “우리는 역사적 사명을 완수했다”고 자평했다. 쿠르드족은 튀르키예 인구 8700만 명 중 약 20%를 차지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PKK 해체 발표 직후 “우리는 ‘테러 없는 튀르키예’라는 목표를 향해 확고한 발걸음을 내디뎠다”며 “테러조직이 무기를 버리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새 시대의 문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그는 PKK가 활동해온 이라크 북부, 시리아, 유럽 등 모든 지역에 이번 해체 선언의 영향이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며 ”더 포괄적인 성명이 며칠 내로 발표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번 해체는 PKK와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이뤄졌다고 영국 BBC방송은 분석했다. PKK 공동설립자로 1999년부터 튀르키예 이스탄불 남서쪽 한 섬의 독방에 수감 중인 PKK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은 이번 해체의 대가로 가석방될 것으로 보인다.
오잘란은 지난 2월 감옥에서 보낸 편지에서 PKK가 무장을 해제하고 스스로 해산할 것을 촉구했다. PKK는 이를 받아들여 3월 초 휴전을 선언하며 오잘란의 석방을 요구했다. PKK가 지난 몇년 동안 튀르키예 군대에 의해 큰 타격을 입었고, PKK의 주요 근거지였던 시리아에서 지난해 12월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 정권이 무너진 이후 활동이 어려워진 점도 해체의 주요인이다.
2028년 대통령선거 출마를 노리는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PKK 해체는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2003년부터 현재까지 장기 집권 중인 그의 임기는 2028년까지로, 3선 출마는 현행 헌법상 불가능하지만 헌법 개정과 중도 사퇴를 통해 출마가 가능하다.
PKK 해체에 따라 에르도안 대통령은 헌법 개정에 대한 쿠르드족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전임자들이 하지 못했던 것을 해냈다고 주장할 수 있으며, PKK 해체로 쿠르드족의 지지를 확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1978년 사회주의 이념을 기반으로 설립된 PKK는 쿠르드족 밀집 거주 지역인 튀르키예 동남부에 독립국가 수립 또는 자치권을 요구하며 시리아와 이라크 북부를 근거지로 무장투쟁을 벌여 왔다. 지금까지 무력 충돌로 4만 명 넘게 사망했다. 튀르키예와 미국·유럽연합(EU) 등은 PKK를 테러단체로 지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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