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위로식탁 무너진다”…물가상승에 ‘불황수혜’ 흔들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입력 2025.05.15 07:17  수정 2025.05.15 07:17

불황에 강세 보였던 서민음식 가격 오름세

통상 경기침체 시 매출 상승세 흐름

하지만 올해는 소비 침체로 기대 약화

소비자 외식비 부담 갈수록 치솟아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하이트진로의 테라와 켈리 맥주.ⓒ뉴시스

샐러리맨·서민들의 가장 친근한 회식 메뉴인 ‘삼겹살에 맥주 한 잔’의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다.


경기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전통적으로 불황에 강세를 보였던 ‘서민음식’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소비자들의 외식비 부담이 더욱 가중되는 모양새다.


통상 서민음식으로 통했던 식품들은 경기침체 시 외식 대신 소비하는 대체품 성격을 띠어 매출이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번 불황에는 소비자들이 대체품조차 찾지 않고 소비 자체를 줄이고 있다.


식품의 경우 필수 소비재로 분류돼 경기 악화 때 오히려 지배적 지위를 얻는다. 저가형 상품을 선호하는 알뜰 소비 경향이 강해지면서다. 하지만 최근에는 서민음식 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물가가 급등해 저가형 상품 카테고리가 축소된 상태다.


주세와 원재료·부자재 가격의 인상으로 맥주의 가격이 올해 또 오를 전망이다. 하이트진로는 오는 28일부터 테라·켈리 등 주요 맥주 제품의 출고 가격을 평균 2.7% 인상한다. 앞서 오비맥주도 지난달 1일부터 카스를 비롯한 주요 맥주 제품의 공장 출고 가격을 평균 2.9% 올렸다.


체감 상승 폭은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주류업계가 출고가를 올리면 편의점·마트 등 소매점 판매가가 더 큰 폭으로 오르고, 식당에선 그보다 더 오르는 ‘나비효과’가 일어난다. 소주와 맥주 출고가가 수백원씩 올라도 식당에선 1000원 단위로 가격을 올린다.


현재 서울 시내 음식점에선 국내 소주·맥주를 보통 병당 5000~6000원 정도에 판매하고 있다. 소주와 맥주를 함께 섞어마시는 '소맥'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1만원 이상이 필요한 셈이다. 음식점이 병당 판매 가격을 1000원씩 인상할 경우 1만원대 중반에 소맥을 마시게 될 수 있다.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음식점 앞에 각종 음식 메뉴 가격이 안내되고 있다.ⓒ뉴시스스

소주, 맥주와 단짝이자 서민 외식의 대표 주자인 삼겹살 가격도 올랐다.


농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정보에 따르면 국내산 돼지고기 삼겹살 100g의 소비자가격은 지난 10일 기준 평균 2648원으로 1년 전보다 15.3% 올랐다. 저렴한 앞다리 가격도 100g에 1457원으로 12.9% 뛰었다.


수입돼지 가격 상승이 국내 돼지고기 가격을 끌어올렸다.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산지 가격이 오른 데다 고환율까지 맞물렸다. 이에 국내산으로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나면서 국내산 삼겹살 가격도 올랐다.


고물가로 인한 외식가격 폭등으로 식당 삼겹살 가격이 1인분 2만원을 코앞에 두고 있다. 외식업계에선 고기 가격보다 전반적인 물가 폭등의 영향이 크다고 설명한다. 식당 삼겹살의 경우 숯값, 인건비, 채소 등 반찬, 임대료, 전기요금 등이 포함돼 있다.


필수 식재료인 계란 가격도 오름세다. 계란 특란 한 판(30구)의 지난 10일 가격은 평균 6999원으로 1년 전보다 5.9% 올랐다. 평년보다 6.7% 높은 수준이다. 계란 수급에 이상은 없지만 지난 3월 산지 가격이 급격히 치솟았다.


유제품 가격도 급등하는 추세다. 유업계 1위인 서울우유는 지난 1일부터 흰 우유를 제외한 가공유 등 54개 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7.5% 올렸다. 빙그레는 이달 말부터 요거트 ‘요플레 오리지널 멀티’의 가격을 5.3% 인상한다.


들썩이는 가공식품 물가는 전체 소비자 물가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지수를 보면, 가공식품 가격은 지난해 같은 달과 견줘 4.1% 올랐다. 통계청은 가공식품 물가 상승이 지난달 전체 물가를 0.35%포인트가량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러한 물가 상승세가 한동안 계속 이어질 전망이라는 것이다. 이상기후로 농작물 생산에 차질이 발생하면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데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서 수입물가에 부담을 주고 있어서다.


외식물가를 비롯한 높은 물가와 그간의 금리 인상 효과로 올해 민간 소비는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 이 여파로 내수가 제약받으면 경제성장 동력도 약해지기 마련이다. 서민층을 중심으로 지갑이 더욱 닫히면서, 소비심리 회복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제품 가격이 올라가면 소비가 위축되고 판매가 안 되다 보니 경제 순환이 안 된다”며 “가격인상을 자제하는게 소비자를 위한 것이지만 큰 축에서는 공급자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올해는 최대한 가격 인상을 억제할 수 있는 요인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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