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제작 환경이 어려워진 가운데, 여배우들이 예능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기 시작했다. 과거 예능 출연은 '이미지 소비'라는 리스크를 가진 양날의 검이었지만, 몇 년 전부터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특히 최근에는 공백기를 채우는 영리한 전략으로 확대됐다. 여기에 신비주의 콘셉트를 내려놓는 연예인이 늘면서 제작진들은 여배우를 호스트로 앞세운 예능 프로그램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부터 7월 방송한 tvN '밥이나 한잔해'는 여배우 원톱 예능의 긍정적 선례를 남긴 프로그램이다. 매회 다른 게스트들과 식사하며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포맷은 메인 MC인 김희선의 솔직하고 털털한 모습을 이끌어내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3회의 경우 수도권 최고 7.4%의 시청률을 내며 여배우 중심의 예능도 시청자에게 충분히 통한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민정은 KBS2 '가는정 오는정 이민정'(이하 '가오정')에 출연한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 후 처음으로 메인 MC에 도전한다. 시골 마을을 찾아 정을 나누고 하룻밤을 보내는 포맷으로 제작된 '가오정'은 방영 전부터 '사람 이민정'의 진솔한 모습 뿐 아니라 마을 주민을 돕고 식사를 준비하는 '일꾼 이민정'의 색다른 모습을 예고했다. 프로그램을 연출한 황성훈PD는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우리 프로그램을 세글자로 말하자면 '이민정'이다"라며 이민정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김남주 또한 SBS Life '안목의 여왕 김남주'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를 만난다. 데뷔 31년 만의 첫 예능이다. '안목의 여왕 김남주'는 김남주가 '픽'한 다양한 아이템을 통해 자신만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공개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서면 인터뷰를 통해 "그냥 저, 김남주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드릴 것"이라며 첫 촬영부터 집을 공개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여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예능이 계속해서 기획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프로그램 자체가 배우에게도 실익이 많다. 자신을 중심으로 기획된 프로그램인 만큼 배우는 작품에서 보여주기 어려웠던 인간적인 매력을 마음껏 보여줄 수 있다. 이는 대중적 친밀감을 높이고 팬층을 넓히는 데에도 유리하다.
예능 스타일의 변화도 한몫한다. 요즘 예능은 출연진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선호한다. 배우들은 더 이상 과거처럼 망가져야 하거나 웃음에 대한 압박을 느낄 필요가 없다. 이로 인해 여배우가 부담을 느낄 만한 이미지 리스크가 자연스럽게 감소했다. 그 결과 '미스터리 수사단', '여고추리반'과 같은 추리 예능, '삼시세끼', '언니네 산지직송'과 같은 노동 예능, '핑계고', '나영석의 와글와글' 등의 토크형 예능이 탄생했으며 많은 배우들이 출연진 혹은 게스트로서 시청자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예능은 배우 스스로 이미지와 정체성을 설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인 선택지로 다가온다. 작품 공백기를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는 시간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여배우에게 예능은 커리어의 흐름을 주체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이민정은 '가오정'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찍어놓고 안나오는 작품이 2개가 있다. 얼른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면서도 "('가오정'은) 어르신과의 만남 자체에서 오랜 세월의 따뜻함과 연륜을 느낄 수 있다"고 시청을 당부했다. 당초 제작진이 3%를 기대 시청률로 짚은 가운데, '가오정'은 첫 방송부터 2.1%를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프로그램의 순항을 업고 여배우 원톱 예능이 방송가의 블루칩으로 떠오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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