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1% 부족한데 사랑스러워… 지프 어벤저

편은지 기자 (silver@dailian.co.kr)

입력 2025.05.17 07:00  수정 2025.05.17 07:00

지프 어벤저 시승기

주차하기 좋은 몸집에 적당한 기본기

수납공간 최대치로, 거주성은 떨어져

도심형 지프의 매력… 곳곳에 숨은 귀여움

지프 어벤저 ⓒ스텔란티스코리아

한국 땅을 밟은지 어언 1년이 다 돼가지만,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는 비운의 모델. 바로 지프 어벤저다. 지프가 만든 최초의 전기차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매력 한 번 발산해보지 못했다. 잔뜩 성난 얼굴로 무지막지하게 산길을 오르는 형들의 존재감이 너무 큰 탓일 지도 모르겠다.


지프에 기대하는 '우락부락함'은 덜하지만, 그렇다고 아픈 손가락으로 전락하기엔 나름의 매력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래서 직접 시승해봤다. 시승 모델은 어벤저 알티튜드 트림으로, 가격은 5640만원이다. 보조금을 적용받으면 5000만원 초반대에 구매할 수 있다.


지프 어벤저 ⓒ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베이비 지프'라는 말이 툭 튀어나오는 외모. 기대했던 것 보다도 훨씬 작고 아기자기한 몸집을 가졌음에도, 영락없는 지프의 냄새가 난다. 브랜드 특유의 강인한 외모가 어벤저에서도 완벽하게 구현된 덕이다.


지프의 맛을 가장 잘 살려주는 건 역시 7개의 직사각형으로 쪼개진 특유의 그릴 모양이다. 사실 전기차라 그릴의 구실을 하지도, 있을 필요도 없는 부분이지만,지프의 아이덴티티를 위해 그대로 살려냈다. 덕분에 멀리서 봐도 한 눈에 지프임을 알 수 있다.


그릴 양쪽으로 사선으로 심플하게 뻗은 헤드램프는 과하지 않으면서도, '신차'의 느낌을 제대로 내는 요소다. 기존 소형 SUV 모델이었던 레니게이드가 랭글러를 빼닮은 원형 헤드램프로 인기를 얻었다면, 어벤저는 슬림하게 일자로 뻗은 헤드램프로 적당히 세련되고 앙칼진 인상을 만들어 내며 '요즘 차'의 느낌으로 변화했다.


지프 어벤저 ⓒ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첫 소형 전기 SUV답게 그간 지프에서 구경하기 쉽지 않았던 아기자기함도 곳곳에서 묻어난다. 색상부터 다채로운 편인데, 어벤저는 시승 모델이었던 에메랄드 빛의 '레이크'와 살짝 어두운 노란 빛의 '썬' 컬러가 주력 색상이다. 원색 위주의 매력을 발산하던 랭글러를 떠올려보니, 확실히 어벤저는 도심에 잘 어울리는 색감에 힘을 쏟은 듯 하다.


잔망스러운 이스터에그를 찾아보는 맛도 쏠쏠하다. 숨길 곳도 많지 않은 이 작은 몸집 곳곳에 재밌는 요소를 잘도 숨겨놨다. 전면 범퍼 하단에 보이지 않게 새겨진 나침반 문양부터, 루프에 올라간 작은 무당벌레까지. 앙큼하기 짝이없다.


전면 유리창에 숨은 이스터에그. 조수석 쪽 전면 유리창 끝에 흩뿌려진 별을, 운전석 쪽 하단에 새겨진 형상이 망원경을 통해 보고 있다. ⓒ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전면 유리창 왼쪽 하단에는 망원경으로 뭔가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데, 전면 오른쪽 상단부를 자세히 살펴보니 별이 새겨져 있다. 자동차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가도, 이 소녀가 별을 보고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귀여움'에 취약한 이들에게 어벤저만큼 사랑스러운 차량이 또 있을까. 뭐든 귀여워보이기 시작하면 완전히 빠진 거라고 했다.


어벤저 내부 ⓒ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내부로 들어서면 많이 봐왔던 지프 만의 투박함이 펼쳐진다. 랭글러에서, 레니게이드에서 봤던 실용성 중심의 인테리어가 예외 없이 어벤저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지프 골수팬들이야 반가울 일이지만, 어쩐지 자꾸만 5000만원대라는 가격을 생각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요즘 안되는 브랜드를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지만, 애플 카플레이, 안드로이드 오토가 빠릿빠릿하게 잘 적용되는 길쭉한 디스플레이는 나름대로 만족감을 준다. 운전 중 필요한 요소들을 대부분 물리버튼으로 살렸단 점도 실용적이다.


어벤저 센터 콘솔에 마련된 수납 공간. ⓒ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곳곳에 마련된 수납공간은 좁은 공간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요소다. 우선 중앙 디스플레이 하단부터 조수석 대시보드까지 길게 안쪽으로 뚫린 공간이 마련됐는데, 이 부분이 생각보다 깊고 넓어서 휴대폰이나 간단한 짐을 올려놓기에 좋다. 입구에 턱이 살짝 마련돼있고 안쪽으로 들어갈 수록 경사지게 깎여있어 급감속, 급가속 시에도 내용물이 떨어질 우려가 적다. 생긴 건 투박하면서 속은 또 섬세하다.


전기차답게 중앙 센터 콘솔 공간을 넓게 뺀 것도 인상적이다. 웬만한 중형 이상 전기차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널찍하다. 뚜껑 없이 개방된 형태라 물건을 잡기도 좋고, 웬만한 크기의 잔짐을 넣어두기에도 좋다.


다만, 휴대폰 충전 패드가 이 공간 바닥면에 깊숙이 위치하는 만큼 무선 충전 중 휴대폰을 이용하고 싶을 때는 팔을 최대치로 뻗어야하고, 짐을 모두 헤집어야 하니 공간을 적당히 비우는 노력도 필요하겠다.


2열 레그룸 ⓒ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거주성은 소형 SUV임을 감안하더라도 크게 떨어지는 편이다. 동급 모델들과 비교해도 다리를 놓을 공간이 좁다. 운전석에 시트 위치를 조정하고도 왼쪽 무릎을 살짝 굽혀야했는데, 성인 남성의 경우엔 거의 왼쪽 무릎을 접고 운전해야할 듯 하다. 조수석 역시 글로브박스 용량을 포기하고 최대치로 깎아 레그룸을 확보하려 애쓴듯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넉넉한 편은 아니다.


차량 크기를 생각하면 애초에 3인 이상이 탈 생각으로 구매하지는 않을 듯 하지만, 2열 거주성은 동급과 비교해도 현저히 떨어진다. 160cm 여성 기준으로 겨우 발 둘 곳을 마련한 듯한 느낌이니, 사실상 짐을 싣거나 어린아이를 태우는 용도로 사용하는 편이 적합하겠다.


적당히 혼자 타기에 좋은 크기와, 아주 만족스럽진 않지만 필요한 건 갖춘 구성. 어벤저는 주행감도 그렇다. 제아무리 전기차가 빠른 가속력이 기본값이라지만, 그렇다고 모두 재밌지는 않다는 사실을 어벤저에 타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지프 어벤저 ⓒ스텔란티스코리아

매력이 흐릴 뿐, 근본이 없는 건 아니다. 편안한 수준의 가속력과 고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몸뚱이, 잡다한 소음 없이 조용한 실내까지. 역사 깊은 브랜드에서 만들어진 전기차인 만큼 기본기만은 제대로 갖추고 있다. 출퇴근용, 장보기용, 아이 등하원용으로 가볍게 탈 만한 일상용 전기차를 찾는 이들에겐 오히려 제격일 수 있겠다.


곳곳에 숨겨진 이스터에그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온 독특한 사운드는 또 한 번 매력에 빠지도록 하는 귀여운 요소다. 전기차에 엔진음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탑재하듯, 어벤저는 방향 지시등을 켰을 때 '둠칫 둠칫' 하는 요상한 소리를 낸다. 틈만나면 장난을 걸어오는데, 이런 얄궂음이 밉지 만은 않다.


시승을 마치고 기록한 전비는 6.1km/kWh. 공인 표준 전비(5.0km/kWh)를 훨씬 웃도는 숫자다. 환경부 인증 292km의 주행거리가 불안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오히려 시승 내내 여유로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지프 어벤저 ⓒ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시승을 마치고 나니, 어벤저의 저조한 판매량이 머리론 이해되면서도 어쩐지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어벤저보다 1000만원 이상 저렴하면서 더 넓은 공간과 긴 주행거리, 재밌는 주행감을 안겨주는 모델들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의 사랑스러움을 가졌을 줄이야. 모두에게 걸맞는 차는 아닐 수 있지만, '누가 뭐래도 내가 좋으면 좋다!'는 당당함을 갖춘 가심비족(族)에게는 꼭 시승을 권해보고 싶다.


▲타깃

-"귀여우면 다야"… 디자인이 제일 중요한 당신

-적당히 갖춘 일상용 전기차가 필요하다면


▲주의할 점

-가격을 말할 때마다 잔소리에 시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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