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주도 '법원행정법 개정안', 법사위 소위 회부…30명~100명 증원 목적
현재 연간 대법관 1명당 4000건 처리…민주당, 사건 신속 처리 필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대법관 증원안을 두고 법조계 및 정치권 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사건을 신속·공정하게 처리하기 위해 대법관 증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정권교체 이후 이재명 대선 후보의 입맛에 맞는 사법부를 구성하기 위한 '빌드업'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16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14일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법안1소위원회로 회부했다.
민주당 내부에서 대법관 정원을 확대하는 법안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김용민 의원은 현행의 2배 정도인 30명을 정원으로 하는 개정안을 제출했고 장경태 의원은 대법관을 100명까지 늘리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대법원은 대법원장 1명과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13명 중 1명이 법원행정처장과 겸임하면서 실제 재판 처리에는 12명의 대법관이 나서게 된다.
이 때문에 각 대법관은 재판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실제 대법관 1인당 처리하는 건수는 연간 약 4000건으로 알려져 있는데 150여명 재판관이 속해있는 독일 연방일반최고법원(우리의 대법원 격)이 재판관 1인당 약 26건(연간 사건 접수 건수 4000여건)에 비하면 무려 150배 이상 많은 것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 측은 대법관의 대규모 증원은 단순 인원 확대가 아닌 재판 신속성 제고를 위한 조치라고 강조한다. 대법원이 지난해 9월 공개한 '2024 사법연감'에 따르면 실제 상고심 민사본안 사건의 처리 기간은 평균 7개월 이상이 소요됐다.
이와 함께, 대법관 증원은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과 사회 대표성 확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고 대법원도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위해 ‘다수 견제 구조’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대법관 증원이 사법 정의 실현과 직접 연결된다는 근거가 부족하고 오히려 비효율성과 혼란만 가중할 위험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관 증원 문제는 전원합의체 기능이 약화해 법령 해석 통일 및 정책법원 기능이 떨어뜨리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의 대법관 증원안에 대해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지난 14일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재판 지연이 심각한 상황에서 대법관 수만 증원한다면 오히려 모든 사건이 상고화돼 재판 확정이 더욱 늦어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대법관 증원이 오히려 사법부 독립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법관 증원에 따라 친정부 성향의 인사들이 대규모로 들어올 경우 오히려 정부에 반하는 판결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독재자로 분류되는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당시 베네수엘라 대법관 정원은 20명에서 32명으로 12명 늘어났는데 지난 2004년부터 차베스가 사망한 2013년까지 총 4만 5000여건의 대법원판결 중 단 한 건도 정부에 반하는 판결이 아니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채희승 변호사(법무법인 대운)는 "민주당 입장에서는 지금 사법부가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가 안 될 것"이라며 "이미 입법 권력도 장악한 민주당이 정권이 바뀐 후 대법관까지 증원한다면 민주당의 입맛에 맞는 인사로 배치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대법관 증원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시점 역시 논란이다. 민주당은 대법원이 지난 1일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에서 무죄 취지의 2심 결정을 뒤집고 사건을 파기환송하자 본격적으로 대법관 증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대법관 증원은 대법원 역량 강화가 아니라 대법원의 힘을 빼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관을 늘리는 의도는 이해하겠지만 왜 이제 와서 늘리는지 궁금하다"며 "정치적 입맛에 맞는 시점에 늘리는 것이 아닌가. 국민을 위해 대법관을 늘리는 것은 맞지만 민주당은 자격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속·공정한 재판은 사법부 내 상부의 영향을 줄일 수 있는 사법행정의 독립으로부터 시작한다"며 "사법 행정을 도맡아 하는 사법평의회 도입이 대법관 증원보다 시급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법관 출신에게만 대법관 자격이 주어지는 상황"이라며 "대법관 내 다양성을 강화하는 것은 대법관 증원이 아니라 법관 이외 법조인 또는 저명한 교수 출신 등이 대법관으로 진출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대법관 증원에 대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속속 나오고 있다. 보수정당 출신 권오을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국민대통합위원장은 지난 15일 YTN라디오 '뉴스파이팅'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대법관을 20명에서 30명까지는 늘릴 수도 있겠지만 100명까지 늘리는 것은 법원 조직 전체를 흔드는 것인데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며 "(대법관을) 100명으로 늘리는 안은 철회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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