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몸값, 줄어든 기회… 배우 산업의 역설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배우 매니지먼트 사업을 잇달아 정리하며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와 씨제스 스튜디오가 배우 사업 철수를 선언하면서, 이른바 '대어급' 스타부터 중견·신인 배우들까지 대거 FA(자유계약) 시장에 쏟아져 나왔지만, 화려한 이름 뒤로는 과열된 몸값과 줄어든 작품 수, 위축된 투자 심리가 맞물린 냉혹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월 배우 매니지먼트 사업 종료를 공식 발표했다.김희애, 차승원, 유승호, 이성경, 유인나, 주우재 등 화려한 라인업에도 불구하고 배우 매니지먼트 사업을 접은 배경에는 음반을 근간으로 한 '본업 집중'이라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다. YG 측은 "사업 구조 재편을 통해 음악 산업에서 리더십을 강화하고, 신규 IP 발굴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씨제스 스튜디오도 지난 4월 같은 결정을 내렸다. 설경구, 류준열, 문소리, 엄지원, 라미란 등 흥행 보증 수표로 불리는 배우들이 소속돼 있음에도 매니지먼트 사업 정리를 공식화했다. 씨제스는 "콘텐츠와 음반 등 핵심 사업에 집중하고 비용 구조를 정비하는 체질 개선과 구조 효율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김희애와 차승원은 키이스트로, 한승연과 김현진은 아에르엔터테인먼트로 새 둥지를 찾았고, 씨제스 소속이던 라미란은 티엔엔터테인먼트와 계약했다. 현재도 FA 시장에는 소속사를 찾는 배우들이 적지 않다.
결국 두 회사 모두 고비용·저수익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배우 매니지먼트 사업을 과감히 접고, 안정적 수익 창출이 가능한 음반 및 IP 비즈니스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사업 구조 조정이 아니라, 배우 매니지먼트 산업 자체가 더 이상 수익성과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매력적인 사업이 아니라는 냉정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결정이다.
겉으로 보기엔 톱배우가 많을수록 매니지먼트 사업이 탄탄할 것 같지만, 현실은 반대다. 이른바 흥행 보증 수표로 불리는 배우일수록 매출에 비해 소속사에 남는 이익은 크지 않다. 수익 분배 구조상 배우에게 유리한 계약 조건이 대부분이고, 출연료의 상당 부분이 배우 수익으로 돌아간다.
여기에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콘텐츠 제작 편수는 크게 줄어들고 촬영 기간은 길어지는 추세다. 이 과정에서 배우에게 투입되는 진행 비용은 늘고, 수익 정산까지 시간이 지연되면서 매니지먼트사 입장에선 이익보다는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FA 시장에는 톱배우부터 중견, 신인 배우들까지 대거 쏟아져 나왔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과열된 몸값과 침체된 시장 상황 속에서 만족할 만한 새 둥지를 찾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작품 활동 역시 이제는 선택 받은 일부에게만 가능한 일이 되고 있다. 제작사들은 불확실한 흥행 속에서 톱배우를 기용하기보다, 리스크가 적고 유연한 출연료 협상이 가능한 신인이나 중견 배우로 눈을 돌리는 분위기다. OTT 중심의 콘텐츠 제작 역시 '스타 파워'보다는 기획력과 화제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스타 배우를 중심으로 한 작품 기획은 과거보다 드문 상황이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톱배우들은 높은 몸값을 유지하겠지만, 정작 설 무대는 점점 좁아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
한 배우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작품 수 자체가 줄어들면서 시나리오 확보도 쉽지 않다"며 "과거에는 업계 사람들끼리 오디션 정보나 시나리오를 서로 공유했지만, 지금은 경쟁이 워낙 치열해 이런 정보 교류조차 조심스러워졌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FA 시장에서 이름값 만으로 통하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대형 소속사가 아닌 이상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과거에는 톱배우라는 타이틀만 있어도 자연스럽게 작품 제안이 들어왔지만, 요즘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비용과 리스크 관리가 철저해졌다. 결국 배우들도 시장 변화에 맞는 전략과 포지셔닝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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