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는 가장 아름다운 일" 아버지 조언에 깊은 공감
사회복지사 길 걸으며 취약계층 도와…병원 봉사도 꾸준히
전태일 분신 사건 이후 노동자 권익을 위해 노동운동에 투신한 사람. 민주화 운동으로 모진 고문과 2년이 넘는 투옥 생활을 견딘 사람. 동탄·고덕·판교·광교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뇌물 한 푼도 받지 않은 사람. 국회의원 3선·경기도지사 2선·경제사회노동위원장(장관급)·고용노동부 장관 등 고위 공직자 지위를 오랜 기간 유지해왔지만 봉천동 24평 아파트 한 채가 전 재산인 사람.
김문수. 대선 후보 자리에 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73년 인생이 조명받기 시작했다. '이렇게 깨끗하고 올곧은 사람이었나' 재평가가 이뤄졌다. 특히 사람들이 한 번 더 놀란 건 그의 외동딸 김동주 씨와 사위의 직업이 사회복지사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치인 자녀 중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례가 드러난 적이 없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어릴 적 동주 씨는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아버지는 동주 씨가 어릴 때 민주화 운동 참여 죄목으로 감옥에 다녀왔고, 그 후엔 노동운동을 한다고 매일 집 밖으로 돌아다녔다. 동주 씨에게 아버지는 매일 아침에 나갔다 밤늦게 들어오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생계 유지를 위해 서점 운영을 하느라 동주 씨를 탁아소에 맡겨야 했다.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부모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 부모님 덕에 유년 시절에 평범한 사람들은 겪기 힘든 일들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잡혀간 아버지를 보기 위해 면회소를 갔고, 과거 아버지 못지 않은 '열혈 노동운동가'였던 어머니와 함께 시위 현장을 자주 다녔다. 한 때는 어머니를 따라 노동자 신문도 배포했다. 그 과정에서 인권의 가치와 소중함을 은연 중에 느꼈을 것이다.
대학 시험을 앞두고 학과를 선택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을 때 아버지는 "사회의 그늘에 있는 약자를 위해 사회복지사가 되는 건 가장 아름다운 일 가운데 하나"라고 조언했다. 아버지 조언에 깊이 공감한 동주 씨는 아버지의 뜻을 함께했다. 비록 졸업 이후의 삶이 고단할 지 모르지만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동주 씨는 결혼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는 가정일보다는 나랏일에 더 힘쓰는 사람이었기에 사춘기 시절에는 '아버지와 다른 가정적인 남자'와의 결혼을 꿈꿨다. 그러나 도지사로 일하던 시절에도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가 밤늦게 귀가해 자정을 넘겨서야 잠자리에 드는, 20년간 한결같은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 같은 한결같은 사람'으로 이상형이 바뀌었다.
동주 씨는 같은 대학 같은 과에서 만난 사회복지사인 현 남편과 결혼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경기도지사에 재직할 당시 결혼을 했는데, 고위 공직자인 아버지에게 혹시 모를 피해가 갈까 청첩장 한 장 돌리지 않고 친인척과 가까운 친구들만 초청해 조용히 결혼식을 치렀다.
이후 두 사람은 함께 사회복지사의 길을 묵묵히 걸으며 취약계층을 도와왔다. 현재는 노인복지 관련 일을 하고 있다. 봉사단체에서 병원 봉사도 꾸준히 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후보는 최근 발간한 자서전에 이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느낀점을 이렇게 적었다. "많지 않은 월급에 늘 고되게 일을 하는 터라 걱정도 많았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의지하며 잘 살아내는 걸 보면 흐뭇하기 그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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