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기념물 제143호
부여는 약 2500여 년 전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송국리 문화가 꽃피던 유서 깊은 역사의 도시다. 백제 26대 성왕은 국가 중흥의 원대한 뜻을 품고 도읍을 웅진에서 사비(부여)로 옮겼고, 그 후 123년간 고대문화를 꽃피웠던 역사 문화의 고장이다.
유서 깊은 부여에 독특한 외형을 가진 금사리성당이 있다. 구한말 천주교가 이 지역에 들어오면서 1906년 부여군에 세워진 최초의 고딕식 성당이다.
성당 외부는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로 장식되었고, 창문 윗부분은 둥근 곡선을 이루어 겉모습이 정교하면서도 우아하다. 특히 본당 안은 중앙에 나무 기둥을 세워 마루를 둘로 나눈 2랑식으로 구획하여 남, 여의 자리를 구분한 흔적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 전통 목조 건물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초기 성당 건물 중의 하나로, 아담하면서도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금사리 성당은 1998년 7월 25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43호로 지정되었다.
초대주임 공베르 신부님은 이곳을 매입하여 새 성전을 건축하였고 성당 건축은 1901년 5월 착공하여 1906년 4월에 완공하게 되었다. 처음 금사리 성당의 이름은 당시 홍산현이었던 행정 구역명을 따라 홍산본당 또는 쇠앙이본당으로 불렸다. 이후 1908년 사제관과 사랑채를 건축한 뒤 1913년 9월 2일 본당 설립 12년 만에 뮈텔 주교님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가졌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당시 인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지도 신부님으로 계셨던 공베르 신부님은 1950년 7월 체포되어 납북되었으며, 그해 11월 중강진 인근에서 옥사하셨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은 금사리성당을 몰수해 공산당의 집합소로 사용하였다. 미군의 전투기나 폭격기 소리가 들릴 때마다 수단을 입은 신부님을 성당 지붕으로 올려보내 백기를 흔들게 해서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은 채 건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체포되어 순교하신 몰리마르 신부와 공베르 주교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추진하고 있는 근·현대 순교자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 추진 대상자이시다. 두 분이 시복시성 되기를 바라며 기도를 바친다.
금사리성당은 점점 늘어나는 신자를 수용하기 위해 1968년 새 성전을 완공하였고, 새 성전 옆으로 주보 성인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상이 세웠으며, 성모 동산이 꾸며져 있다.
성모 동산에는 금사리성당 초기에 사용하던 돌 제대가 모셔져 있는데, 돌 제대 한쪽에 ‘1913년 9월 2일 민 주교 축성’이라고 쓰여 있는 글씨가 본당의 오랜 역사를 잘 말해주고 있다. 옛 사제관은 현재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o 주소 :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성충로1342번길 21
o 전화 : 041-832-5355
o 주변 둘러볼 곳 : 궁남지, 정림사지5층석탑, 국립부여박물관, 낙화암, 고란사
홍덕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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