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골프장 풍경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도 골퍼들의 스코어카드 위 숫자를 늘리는 천덕꾸러기 같은 ‘골프장 워터 해저드’. 우리는 그 잔잔한 물 위에 또 다른 가치를 비춰보게 된다. 바로, 재난 앞에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조용한 소방水로서의 역할이다.
지난 3월, 거센 산불이 경북 지역을 집어삼켰을 때, 그 불길을 막아낸 이들은 소방대원만이 아니었다. 골프장 캐디와 직원들이 밤낮 없이 물을 퍼올렸고, 헬기는 워터해저드 물을 실어 날랐다.
헬기가 물을 퍼올리는 와중 어느 골퍼가 골프공을 날린 몰지각한 사례가 언론에 오르내렸지만, 정작 주목해야 할 점은 그 골프장 해저드가 실제로 산불 진화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해저드는 본래 골퍼들의 도전 의식을 자극하며, 골프장의 품격을 높이는 장식적 요소가 본래의 기능이지만 저류형으로 설계된 해저드는 깊이가 3미터 이상, 담수량 수십만 톤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단순한 ‘장식용 물’이 아니라, 위기 시 국가 기반시설로 전환 가능한 자산이다.
그래서 일부 골프장은 이 기능을 넘어, 위기 상황을 염두에 둔 공간으로 해저드를 설계해왔다. 전남 나주의 해피니스컨트리클럽은 농번기마다 농촌에 관개용수를 나눴고, 블랙스톤제주 골프장은 오름 화재에 대비해 폰드를 깊고 넓게 조성해두었다. 故 정상영·정주영 형제가 “전쟁이 나면 콩밭이 되도록 하자”며 트랙터가 돌 수 있게 만들었던 금강컨트리클럽의 널찍한 페어웨이는, 그 시대의 기업가 정신이 지역과 국가를 향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골프장이 이처럼 ‘사회 안전망’으로 기능하기까지는 결코 적지 않은 희생이 따른다. 해저드 유지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고, 헬기나 장비 사용으로 인한 손실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다행히 소방기본법 제49조의 2는 이에 대한 손실보상 규정을 마련하고 있지만, 보상의 실효성이나 접근성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그래서 더더욱, 이들의 조용한 헌신이 빛난다. 법이 요구하기도 전에 먼저 손을 내밀고, 비용보다 생명을 우선한 이들은 거창한 구호 없이도 진정한 ‘공공의 자산’으로 자리하고 있다.
불이 나기 전까지는 골프장에서 반짝이고 있던 물의 가치를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그 물은 누군가의 집을, 삶을, 내일을 지켰다. 골프장 워터 해저드는 이제 단순한 장애물이 아니다. 위기의 순간, 가장 먼저 달려오는 지역사회의 숨은 소방관이다.
물론 현실은 간단하지 않다. 해저드 유지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고, 긴급 상황이 닥치면 사유재산 손실도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장들은 묵묵히 사회적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런 기여는 수치로 환산하기 어렵고, 때론 조명조차 받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조용한 공헌’에 더욱 귀 기울여야 한다.
언젠가 또 다른 재난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잔디 너머, 연못 하나가 마을을 지켜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 해저드 안에 고인 것은 물만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삶이었고, 함께 나눈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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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희종 한국골프장경영협회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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