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 딜레마 ‘한 건’ 박주영 밖에 없다

데일리안 스포츠 = 임재훈 객원칼럼니스트

입력 2014.11.20 13:32  수정 2014.11.20 13:36

브라질월드컵 최악의 부진은 벗어난 움직임 선보여

제로톱 대안 있지만 원톱 카드 버릴 수 없어

슈틸리케 감독은 마지막 순간까지 딜레마에서 빠져 나오기 쉽지 않겠지만 결국 박주영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연합뉴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내년 1월 아시안컵을 앞두고 최종 모의고사 성격을 띤 요르단·이란과의 중동 원정 평가전에서 1승1패를 기록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그동안 직접 보지 못했던 ‘관심 선수’에 대한 확인 작업과 그동안 구상해 왔던 여러 전술 운용, 조합을 실험했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선수는 역시 최전방 스트라이커로서 대표팀 득점력을 책임질 수 있느냐를 놓고 실험 대상이 됐던 박주영(29·알 샤밥).

무적 신세로 여름을 날리고 최근 중동으로 진출해 소속팀에서 멋진 결승골까지 성공시켰고, 이동국(전북)-김신욱(울산) 등 당초 아시안컵에서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나설 것으로 기대했던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슈틸리케 감독으로서는 박주영 카드를 만질 수밖에 없었다.

알 사밥 입단 후 첫 골을 성공시키는 장면을 지켜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박주영의 간결한 패스와 물 흐르듯 거침없이 공간을 찾는 움직임, 슈팅을 시도해야 하는 순간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슈팅을 시도해 각도가 별로 없었던 골문을 열어젖히는 장면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그동안의 공백기에 대한 우려가 무색할 정도의 골이었다.

결국, 슈틸리케 감독은 박주영을 대표팀으로 불러들였다. 그 결과 박주영이 이번 중동 원정 2연전에서 거둔 수치상의 기록은 108분 출전 무득점. 박주영은 지난 14일(한국시각) 요르단과의 평가전에서 손흥민(레버쿠젠)이 컨디션 난조로 벤치에서 시작한 가운데 풀타임 활약했고, 18일 이란과 평가전에서는 후반 교체 투입돼 그라운드를 누볐지만 공격포인트를 올리지는 못했다.

수치상 기록으로만 보면 박주영이 아시안컵에 나설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기는 힘들다는 평가가 있지만 슈틸리케 감독으로서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베이징올림픽이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과 같은 야구 국가대항전에서 ‘국민타자’ 이승엽이 대회 내내 부진하다 결정적인 순간 팀을 승리로 이끄는 홈런을 쏘아 올리며 이름값을 했던 것처럼 박주영은 2012 런던올림픽 일본전 결승골 포함 한국축구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 여러 차례 결정적인 골을 빚은 경험이 있다.

두 차례 중동 원정 평가전에서도 박주영이 비록 골은 터뜨리지 못했지만 수치상으로 나타나지 않는 기여도와 앞으로 있을 경기에서 중요한 순간 ‘결정적인 한 건’을 해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선수라는 점을 슈틸리케 감독에게 보여줬다. 최전방 공격수로서 골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내고 동료 위치에 따라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어떻게 취해야 하는지 알고 움직이는 박주영의 영리함과 폭넓은 시야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요르단전에서 박주영은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상대 수비를 교란시켰고, 요르단 수비진이 박주영의 움직임을 쫓아 움직인 공간을 한국의 다른 공격수들이 점유하면서 좋은 장면을 많이 만들어냈다. 요르단전 전반 36분경 차두리의 크로스를 멋진 헤딩골로 연결한 한교원(전북)의 뒤에는 박주영이 있었다. 박주영이 상대 수비수들을 달고 움직이며 공간을 만들어 준 결과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요르단전 직후 "공격수는 슈팅수와 골로 평가하게 마련이지만 박주영은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경기를 치렀다”며 “동료의 마지막 패스에서 실수들이 자주 나오면서 박주영이 제대로 된 지원을 많이 못 받은 면이 있다”고 박주영을 감쌌다. 이어 “칭찬할 부분은 다른 선수들보다 침착했고 볼 간수도 잘했을 뿐만 아니라 체력에서도 밀리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거듭 박주영의 무득점보다는 그의 준비상태에 대한 만족을 더 강조했다.

이란전에서도 박주영은 후반전에 교체 투입되어 비교적 짧은 시간 경기를 펼쳤지만 영리한 움직임과 위협적인 슈팅을 보여주며 몸 상태와 경기감각이 충분히 올라와 있는 상태임을 입증했다. 일각에서는 박주영이 이번 중동 원정에서 골로 보여준 것이 없다는 점을 들어 여전히 박주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거두지 않고 있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일단 박주영에게 합격점을 주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이동국과 김신욱이 부상 중인 상황에서 이들의 아시안컵 참가가 어렵다고 본다면 슈틸리케 감독이 아시안컵에서 ‘타깃형 원톱’을 최전방에 위치시키는 4-2-3-1 포메이션을 펼칠 경우 현재로서는 박주영 외에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물론 슈틸리케 감독이 원톱을 두지 않고 ‘제로톱’이라는 대안을 선택할 수 있겠지만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한 전술운용이 강점으로 평가받는 슈틸리케 감독임을 감안했을 때, 원톱 공격수를 기용하는 전술을 포기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이번 중동 원정에서도 요르단과 이란의 전력차를 감안하더라도 박주영이 출전한 경기에서는 그나마 골이 나왔지만, 박주영이 후반 막판에 기용된 이란전에서는 무득점에 그쳤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주영이 선발로 출전해 끊임없이 공간을 찾아 움직이고, 상대 문전에서 수비진에 부담을 주면서 동료들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한편 때로는 자신이 직접 결정을 시도하는 전술 운용이 적어도 제로톱보다는 효과적이라는 점이 이번 중동 원정에서 확인됐다고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마지막 순간까지 딜레마에서 빠져 나오기 쉽지 않겠지만 결국 박주영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동안 대표팀이 중요한 국제대회 출전을 앞둔 상황에서 박주영이 논란과 토론의 대상이 되지 않은 적은 별로 없다. 박주영에게 내년 1월 호주 아시안컵 무대가 명예회복의 무대이자 재도약의 무대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임재훈 기자
기사 모아 보기 >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