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추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수는 단연 나훈아였다. ⓒ 데일리안
가족, 친척,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 긴 연휴, 고향, 영화, 특선 TV 프로그램….
민족의 최대 명절 추석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추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중가수는 누구일까. '트로트의 황제' 나훈아의 존재를 아는 이들이라면, 그를 첫 손가락에 꼽는데 이견을 달지 않을 것이다.
1980년대 이후 TV 프로그램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명절엔 어김없이 안방을 사수하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린 '명절의 제왕'이 바로 나훈아다. 실제로 그가 활동을 멈춘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지상파 방송 3사는 명절마다 '나훈아 모시기' 경쟁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나훈아의 파워는 시청률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2005년 MBC를 통해 방송된 '나훈아의 아리수'는 무려 17.8%의 시청률(TNS 미디어 리서치 기준)을 기록하며 SBS에서 방영된 영화 '반지의 제왕3(13.5%)'를 제치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한 시청자들은 마치 오랜 만에 만난 부모·형제라도 된 듯 나훈아의 노래 한 소절 한 소절에 귀 기울이며 열광했다.
'가왕' 조용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전성기였던 1980년대 명절이 되면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화요일에 만나요' KBS '젊음의 행진' 등 각 방송사의 간판 가요 프로그램은 어김없이 '조용필 스페셜'로 채워지곤 했다.
TV 방송 활동을 접고 콘서트에 전념하기 시작한 90년대 이후부터 뜸해지긴 했지만, 1996년 SBS '가을 그리고 조용필' 2003년 MBC '데뷔 35주년 조용필 콘서트' 등이 특집 편성돼 팬들의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그런가하면,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가수는 서태지다. 2000년 '20000909 서태지 컴백콘서트'가 추석특집으로 MBC에서 방송된 것. 문화대통령의 귀환을 알린 역사적인 이 방송은 서태지 신드롬에 다시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형 가수들의 콘서트가 추석 연휴에 특집 편성되는 사례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장윤정, 이승철, 이승환 등의 콘서트가 간간히 빈자리를 채우곤 했지만, 이마저도 점점 사라져가는 추세다.
나훈아와 조용필처럼 시청률을 보장할 만한 국민가수가 사라져가고 있는 데다, 콘서트 무대에 애착이 강한 뮤지션일수록 방송에 소극적이라는 점이 그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최근 들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경연 프로그램들이 그 빈자리를 효과적으로 메워주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명절에는 다양한 콘셉트의 경연 프로그램이 대형가수 콘서트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 MBC·KBS·JTBC
2011년 MBC '나는 가수다'가 큰 반향을 일으킨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경연 프로그램들은 이미 각 방송사의 간판 가요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경연 프로그램은 곧 80~90년대 명곡들을 재조명하는 복고 열풍으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이슈를 끊임없이 창출하면서 중장년층부터 10대 20대까지 아우르는 국민 프로그램으로 성장했다.
특히 '나는 가수다' 인기가 시들하면서 잠잠해지는 듯하던 경연 프로그램의 인기는 올 들어 MBC '복면가왕'의 열풍과 함께 다시 절정기를 맞았다. 이번 추석도 이 같은 분위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방송사는 경연 혹은 복고를 앞세운 특집 프로그램으로 가요 팬들의 시선잡기에 나섰다.
'복면가왕'으로 상반기 재미를 톡톡히 본 MBC는 두 편의 음악 특집을 내세웠다.
'듀엣가요제 8(에잇플러스, 25일 오후 9시30분)'은 국내 최정상 걸그룹 8팀의 대표 멤버들과 일반인이 파트너가 돼 듀엣 무대를 만드는 음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씨스타 소유, 에이핑크 김남주, AOA 초아, 시크릿 전효성, 미쓰에이 민, 포미닛 허가윤, 애프터스쿨 리지, 마마무 휘인 등 화려한 라인업으로 방송 전부터 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MBC '어게인-인기가요 베스트50 95-96'(24일 오후 11시15분)은 가요계 르네상스로 평가받는 1990년대 인기그룹들을 TV로 불러냈다. DJ.DOC, 임창정, R.ef 등 12팀이 당대 대표 음악프로였던 '인기가요 베스트 50'을 재현한 무대에 올라 큰 호응을 얻었다.
KBS 2TV '아이돌 전국노래자랑'(29일 오후 3시)은 1TV의 장수 프로인 '전국노래자랑'과 아이돌 가수들의 대결 무대를 접목한 신선한 기획으로 눈길을 끈다. 특히 이날 방송의 MC로 '전국 노래자랑'의 송해가 나설 예정이어서 흥미를 더한다.
SBS 심폐소생송'(26일 오후 10시45분)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지 못한 명곡을 재조명하고자 기획됐다. 옥주현, 린, 정인, 이영현이 등 한국을 대표하는 디바 4인방이 숨은 명곡들을 되살려내는 미션을 수행했다. 기대 이상의 화제를 모으면서 단번에 ‘복면가왕’을 잇는 대세 음악 예능프로그램으로 떠올랐다.
'불후의 명곡'(26일 오후 6시 5분)은 아나운서 특집을 준비했다. 연예인 못지않은 끼와 재능을 겸미한 KBS 아나운서들이 듀엣으로 꾸며 추석연휴를 맞은 시청자들에게 큰 즐거움을 줬다.
JTBC '히든싱어'도 본격적인 시즌4에 앞서 '커밍순 특집-도플싱어 가요제'(27일 오후 11시)를 선보였다. '도플싱어 가요제'는 '히든싱어'에 출연했던 화제의 원조 가수와 모창 능력자가 한 팀이 돼 원조가수의 노래를 듀엣으로 부르는 가요제다. 이승환, 이재훈, 임창정, 윤민수, 이수영, 환희, 휘성, 장윤정이 출연해 모창능력자들과 한 팀을 이뤄 경연을 펼쳐 시즌4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끌어올렸다.
과거 추석특집이 슈퍼스타 한 명에 의존했다면, 이제는 기획으로 승부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하지만 다양한 음악과 가수들의 모습을 접할 수 있게 된 반면, 추석에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함이 사라진 점은 아쉬움으로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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