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얼굴을 만지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지난 19일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지역구(대구 동구을)에 출마한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친박근혜계 핵심 의원들이 대거 참석하며 친박계의 이른바 '유승민 죽이기'가 시작된 모양새다. 20대 총선이 5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 유 전 원내대표는 차근차근 보폭을 넓히며 맞서고 있다.
최근 지역구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유 전 원내대표는 21일 대구수성관광호텔에서 열린 대구·경북지역 언론인 모임인 '아시아포럼21'이 주최 릴레이 정책토론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선거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의 뜻을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유 전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은 특정인들을 직접 내려 보낼 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전 구청장의 개소식에 친박계 홍문종 의원과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 이장우 대변인에 참석해 '진실한 사람'임을 강조하며 노골적인 '진박' 마케팅을 벌인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개소식에는 이 뿐 아니라 문희갑 전 대구시장, 김철기 전 친박연대 사무총장 등 친박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고 이인제 최고위원과 윤상현 의원은 일정상 참석을 하지 못하는 대신 축전으로 지지를 표했다. 사실상 '유승민 축출 본격화'라고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유 전 원내대표는 "특명 등의 이야기가 있지만 박 대통령이 특명을 주거나 마패를 주는 사람은 아니다"라며 "내가 공천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된다고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당에서 정할 공정한 경선룰에 따라서 하면 공천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자신의 '공천 탈락설'을 일축했다.
이종훈·민현주 의원 등 소위 '유승민 키즈' 공천 탈락설과 관련해선 "절대 동의할 수 없는 표현"이라며 "그분들을 밑에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대구와 국가를 변화시킬 든든한 동지이자 정치인, 주인공이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잘라말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에게) 몇 번 쓴 소리를 한 것은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 것"이라며 "나는 나름 최선을 다해 박 대통령 당선을 위해 노력을 했고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유 전 원내대표는 그동안 친박의 공세에 대응을 자제해왔다. 적극적으로 반박하기 보다는 지역 주민들의 선택을 따르겠다는 자세로 무대응 방침을 이어왔다. 이런 그가 적극적으로 공개 석상에서 친박계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은 이례적인 행동으로 보기에 충분했다.
앞선 17일에는 자신의 입지를 둘러싼 현 상황에 대해 "요즘 좀 외롭다"고 털어놨다. 이채관 전 선진당 홍보위원장의 서울 마포을 선거 사무소 개소식 자리에서 한 농담 섞인 발언이었지만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만 비춰 온 그의 최근 속내가 어떤지 알 수 있는 '심경고백'으로 해석됐다.
실제로 이달 초 있었던 친박계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의 세미나 겸 송년 회동에는 '유승민계'로 분류되던 의원들이 여럿 참석했다. '탈유이박(탈 유승민 후 박근혜계로 이동한다는 뜻)' 현상이 뚜렷해지는 현 분위기가 유 전 원내대표의 발언을 뒷받침한다.
이처럼 친박계의 '유승민 찍어내기'가 점차 노골화되며 당사자인 유 전 원내대표는 알게 모르게 조금씩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총선을 앞두고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친박계의 세과시에 대해 대구 지역민들의 반발도 있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을 지지하면서도 유 전 원내대표를 지지하는 주민들은 유 전 원내대표를 향한 청와대의 부당한 압력이 탐탁치 않은 것이다.
"부당한 압력 옳지 않다" 대구 민심은 어디로?
유 전 원내대표의 지역구에서 20년째 거주 중인 한 20대 여성은 21일 '데일리안'에 "유 전 원내대표의 정책적인 모습은 보지 않고 '배신의 정치인'으로 규정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청와대의 모습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 전 원내대표는 20대부터 40대 초반까지의 젊은층에게서 호감도가 높다. SNS 상에서도 유 전 원내대표의 활동에 관한 게시글은 공유가 많이 되고 지역 시장에 가도 상인들이 반기는 분위기가 많다"며 "그런데 청와대에서 여론을 이용해 그를 찍어내리려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실제로 중장년층, 특히 60대 이상 사이에선 '유승민이가 대통령을 배신했다더라'는 의견이 많다. 청와대의 언론 플레이로 인한 유 전 원내대표 거부 반응이 있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20대 동구민은 "친박 쪽에서 (자신들이 지지하는 인사에 대해) '배신하지 않는 진실한 사람' 이런 문구로 너무 과도하게 홍보하는 경향이 있다"면서도 "유 전 원내대표를 향한 친박계의 압박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유 전 원내대표가 이를 전략적으로 이용해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판을 짠다면 총선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구하면 당연히 박 대통령 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릴 것이라는 관념이 있지만 젊은 층을 중심으로 오히려 유 전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50대 남성은 "TK(대구경북) 지방은 박 대통령의 세가 굉장히 세다. 동구청장에 힘이 실리는 건 당연하다"며 "대통령을 도와줘야 되지 흔들면 안 된다. 이런 일(국회법 개정안 파동)이 없었으면 유 전 원내대표를 찍겠지만 이제는 이 전 구청장을 찍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미우나 고우나 '오로지 박 대통령'이라는 일부 대구 민심을 잘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대구시당 관계자는 본보에 "당원들은 기본적으로 국민들보다 당에 애정이 많다. 당원이라고 무조건 특정 세력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명분을 봐서 질타할 부분은 질타한다"며 "당원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계파 간 갈등이) 대구를 흔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한편 유 전 원내대표는 앞으로도 주민들과 접촉을 활발히 하며 지역 활동에 매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승민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총선 전까지 모든 의원들이 그렇듯 (유 전 원내대표도) 지역 활동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요즘 좀 외롭다'는 유 전 원내대표의 말에 행간에 대해선 "속내를 밝혔다기보다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이니 국회에 들어와 같이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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