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접수’한 시민단체, "부처 조직 장악할 수 있나"
시민단체 학자 그룹 대거 등용
조직문화 개혁 기대도
문재인 정부 인사의 핵심 키워드는 '시민단체'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새 정부가 출범했고, 그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촛불 시위의 중심에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가 있었던 까닭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신임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명했다. 박 후보자는 2012년부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공동 대표를 맡아왔다. 경실련은 재벌개혁을 통한 경제민주화 실현을 기치로 내건 경제 분야의 대표적 시민단체로, 참여연대와 함께 진보 시민사회계의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다.
시민단체 출신을 발탁하는 기조는 새 정부 초반부터 나타났는데, 특히 참여연대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청와대 핵심 요직은 물론, 장관급과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까지 활동범위도 넓다. 경실련 출신으로는 하승창 사회혁신수석에 이어 박 후보자가 이번 정부의 두 번째 내각 입성이다. 반면 박근혜 정부에는 시민단체 출신이 한 명도 없었다.
앞서 임명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경우, 전직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으로 이번 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을 좌우한다. 이른바 '재벌 저격수'로 불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으로 장 실장과 함께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신임 법무부 장관과 함께 검찰개혁을 이끌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역시 참여연대 사법개혁센터 부소장이었고, 앞서 자진 사퇴한 안경환 전 후보자는 사법개혁센터에서 조 수석과 인연을 맺었다.
장·차관급에서도 시민단체 출신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정현백 여성가족부·김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도 참여연대에서 활동했다. 이번에 지명된 박 신임 법무부 장관 후보자까지 5개 부처 장관을 시민단체가 ‘접수’한 셈이다. 김상곤 후보자는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에서도 활약했다. 아울러 조현옥 인사수석은 시민단체인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출신이다.
‘非공무원’ ‘非외무고시’ 조직 문화 탈피? “기대·우려 공존”
다만 이들 대부분을 단지 ‘시민단체 출신’이라는 공통점으로만 국한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 이날 지명된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의 경우, 1994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과 2000년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지만, 워낙 오래 전의 경력인 만큼 학계에서조차 시민단체보다는 ‘학자 출신’으로 분류하는 인사다. 박 법무장관 후보자 역시 ‘형법학자’라는 타이틀이 앞선다.
대신 공무원 또는 외무고시, 검찰 등 전통적인 ‘주류 집단’ 출신이 아닌 인물을 기용하는 기조로 변화하고 있다는 데 방점이 찍힌다. 각종 시민단체 및 재야 활동가들은 공직 사회에선 오랜 기간 동안 ‘비주류’로 분류됐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박상기 후보자도 각각 비외무고시·비공무원·비검찰 출신이 조직의 수장으로 발탁됐다는 자체부터 화제가 된 케이스다.
따라서 단순히 시민단체의 ‘권력화’보다는, 기존 관례를 뛰어넘고 기용된 비주류 인사들이 기존의 권위적 조직 내에서 어떤 식으로 역량을 발휘할지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시민단체 등 외부에서 활동했던 인물들로서는 오랜 기간 굳어온 부처의 문화에 적응하고, 더 나아가 조직을 장악하고 개혁할 능력을 보여주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단순히 시민단체 출신이라고 묶기보다는, 학자라든가 해당 조직의 주류가 아니었던 사람들이 발탁됐다는 게 이번 정부 인사의 중요 포인트”라며 “전통적인 상명하복·권위주의적 조직 문화에 묶이지 말고, 그 조직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고 개혁을 선도하라는 취지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다만 본래 취지와는 달리 현실적 우려도 공존한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몇 십년 간 굳어온 조직 문화라는 게 단지 수장이나 사람 몇 바뀐다고 고쳐지기는 결코 쉽지 않다. 조직에서는 저항이 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게다가 수장이라면 그 부처나 조직을 장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데, 학자나 재야 단체 출신들은 기본적으로 조직 문화와는 잘 안 맞는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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