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탁 계약 건수·전체 판매액 전년비 반토막
잇따른 CEO 중징계, 신규 펀드 진입 기준↑
라임·옵티머스 등 대규모 사모펀드 후폭풍으로 은행권이 사모펀드 수탁 몸사리기에 나섰다. 사모펀드 시장이 쪼그라들며 중소운용사가 고사될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은 은행들은 수탁사의 책임이 강화된 만큼 신중히 접근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 A은행은 수탁 펀드 업무 체크리스트를 대폭 보완하고, 관련 자산운용사 등에도 안내 메일을 발송했다. 신규 펀드를 새로 받기보다 기존 펀드 업무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은행들은 수탁 책임이 강화된 이후 한정된 인력으로 수탁 펀드를 더 받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일부 은행은 해외 직접 투자 펀드를 수탁하지 않는 등 펀드 편입 자산 조건을 조정하기도 했다. 이 외 AUM(운용자산) 상한선을 올리거나, 기존 수탁 계약 이력이 없는 운용사는 신규 계약을 보류한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25일부터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도 은행권들의 펀드 수탁 거부를 더욱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펀드를 가입하기 위해서 투자성향이나 위험등급을 고객들이 진단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등 준비할 것이 많아졌다. 업무 대기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비대면으로 가입을 권유하거나, 펀드 판매에 소극적으로 임하게 되는 상황이다.
금소법을 지키지 않으면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받는데, 과징금 규모는 펀드 판매를 통해 얻는 수수료를 훨씬 넘어선다. 오는 10월 시행을 앞둔 자본시장법 개정안 또한 수탁사의 감시 책임 의무를 강화하는 등 은행이 수탁을 기피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모펀드를 판매하고 얻는 수수료 수입보다 리스크가 더 크니, 적극적으로 사모펀드 판매나 수탁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다.
이에 국내 사모펀드 시장 규모도 감소했다. 이영 국민의 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은행권 펀드 수탁계약 현황’ 자료에 따르면 8개은행(신한·하나·우리·농협·부산·산업·SC제일·씨티)의 지난해 사모펀드 수탁계약 건수는 2168건으로 전년비 52.5% 급감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의 올해 1분기 말 사모펀드 판매잔고는 전년대비 32.8% 줄어든 11조8894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 관계자는 “사모펀드 환매 사태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철퇴를 얻어맞은 은행측은 안정적인 운용사 위주로 펀드를 수탁받을 수 밖에 없다”며 “자산운용사의 우려를 인지하고 있으나, 대부분 중소 운용사인만큼 수탁 펀드 성사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금융사 측은 “한정된 인력으로 리스크를 감내하며 은행측이 받는 사모펀드 수수료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사모펀드 사태 이후 고객들의 관심도 많이 줄어든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라임 펀드 관련 손태승 우리금융회장에게 ‘문책 경고’, 진옥동 신한은행장에게 ‘주의적 경고’ 상당 징계를 내렸다. 해당 금융사도 기관 징계를 처분받았다. 금융사 임원 제재 수위에 따라 중징계인 문책경고 이상부터는 3∼5년 금융사 취업이 제한된다.
라임 사모펀드 판매사인 하나은행은 금감원 제재심 일정이 지연되고, 금감원장 인사 시점과 맞물리며 관련 절차를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