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국회 의결 앞둔 2차 추경안
3대 핵심 내용 전부 여당 뜻대로
담당 부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국가 예산은 정부가 짠다. 정부가 쓸 돈이니 당연하다. 부처별로 필요 예산을 정리해서 계획서를 제출하면 기획재정부가 최종 조율해 예산안을 만든다.
심의는 국회가 한다. 정부가 돈을 흥청망청 쓰는지 살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놓친 부분이 있으면 잘 살펴 필요한 곳에 적절한 돈이 쓰일 수 있도록 한다.
이번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도 마찬가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국민 삶이 어려워지자 필요한 곳에 적절한 재원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33조원 규모 예산을 짰다. 정부 혼자 짠 건 아니다. 어차피 국회가 심의하는 만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사전 논의를 거쳤다.
국민 재난지원금(상생지원금)은 가구소득 하위 80%에 지급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들에게 최대 9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더불어 1000조원에 육박하는 나랏빚을 갚는 데 2조원을 쓰기로 했다. 여당과 정부는 그렇게 협의했다.
그런데 여당이 돌변했다. 정부 손을 떠난 추경안이 자신들 품으로 들어오자 태도를 바꿨다. 소득 하위 80%에 지급하기로 한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 지급으로 늘렸다. 홍남기 부총리 및 기획재정부 장관이 ‘절대 불가’를 외쳤지만 여당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모습이다. 많은 전문가도 선별지원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여당은 외면하고 있다.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넓히더니 소상공인 피해 지원 규모도 키웠다. 지원액을 최대 900만원에서 3000만원까지 확대했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됐고, 소상공인 피해가 극심해질 것으로 예상되자 지원금을 늘린 것이다. 그나마 소상공인 지원 확대는 추경안 편성 이후 4차 대유행이 시작된 만큼 정부와 야당, 경제 전문가들도 동의한다는 게 재난지원금과 다른 점이다.
그런데 지원을 확대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늘어난 돈을 어디서 충당하느냐다. 국채를 발행하자니 ‘빚 없는 추경’이란 명분에 안 맞다. 결국 여당은 가장 먼저 국채상환에 쓰기로 한 2조원에 손을 대는 모습이다. 홍 부총리가 추경안 편성 전부터 예고했던 국채상환이지만 여당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이런 걸 두고 ‘안중에도 없다’고 표현한다.
결과적으로 기재부가 제출한 2차 추경안 3가지 핵심 내용이 모두 달라졌다. 대한민국 전체 살림을 담당하는 부처 의견이 사실상 무시됐다. 재정 담당자이자 전문가인 기재부 공무원들이 고심 끝에 짠, 그것도 사전에 여당과 조율까지 한 예산안이 완전히 달라졌고 기재부는 역할을 잃었다.
예산은 본래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 기재부가 늘 옳을 수 없고, 국회가 늘 틀린 결정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번과 같이 전 부문을 뜯어고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참고로 국회와 달리 기초의회에서는 예산을 증액할 수 없다. 지자체가 제출한 예산을 삭감할 수는 있지만 늘릴 수는 없다. 기초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에 선심성 예산을 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다. 여당이 추경안 지원금을 늘리는 것도 결국엔 선심성 예산이란 점에서 예산 증액 기능이 없는 기초의회와 비교된다.
국회는 23일 본회의를 열어 추경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추경안이 최종적으로 어떤 모습이 될지 예단할 수 없지만 기억해야 할 부분은 하나다. 여당이 선심 쓰는 동안 결과를 책임져야 할 기재부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