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사법공약' 입장 물어보니…"생각한 것 있지만 말하긴 어렵다" 불편한 심경 표현
수사지휘권 폐지 명분 제공했다는 책임론 회피 포석…'무용론' 공수처 두둔할 처지도 안 돼
법조계 "강경발언 잘하고 전면에 나섰는데…尹 당선 가능성 커지자 몸 사리나"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후보가 검찰 독립성 강화를 골자로 한 사법개혁안을 발표해 파장이 일고 있는 가운데,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관련 언급을 피하고 있다.
표면상의 이유는 현직 법무장관으로서 선거 관련 언급을 자제한다는 것이지만, 속내는 수사지휘권 폐지 공론에 명분을 제공했다는 책임론을 피하고, 당선 가능성이 커진 윤 후보와의 충돌이 껄끄러워 몸을 사리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박 장관은 지난 15일 과천정부청사에서 취재진과 만나 윤 후보의 사법개혁 공약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선거 관련된 것이 아니면 의견을 얘기할 순 있지만, 후보의 공약에 대한 평가는 말하기 어렵다. 생각한 것이 있지만 말하긴 어렵다"며 불편한 심경을 에둘러 드러냈다.
앞서 윤 후보는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권한 축소 및 폐지 가능성을 전제한 제도 개선, 검찰 직접수사 범위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사법개혁 공약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1등 공신'으로 꼽히는 박 장관으로서는 불만을 느낄만한 사안이다.
하지만 윤 후보의 공약에 섣불리 반발했다가는 오히려 반격당할 수도 있다. 박 장관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더불어 수사지휘권을 남용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수사지휘권 폐지 명분을 제공했다는 책임론을 피하려면 침묵을 지키는 편이 낫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부장검사 출신 박인환 변호사는 "애초 국민들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문제의식도 없었다"면서 "추 전 장관과 박 장관이 정치적으로 지휘권을 남용해 폐지 여론 및 명분을 자초한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윤 후보의 공수처 권한 축소 공약도 반박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박 장관 주도로 설립된 공수처는 출범 이래 '황제의전' '정치편향' '통신사찰' '성과부재' 등 굵직한 논란이 야기돼 여야 구분 없이 거센 질타를 받았고, 박 장관도 지난해 "국민적 여망과 기대가 충분히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저 역시 실망감이 있다"며 혹평한 바 있다.
특히 공수처는 다른 사건들은 미뤄둔 채 윤 후보에 대해서만 4개 혐의를 입건해 '윤석열 수사처'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았고, 현재 혐의를 밝혀낸 사건은 전무한 상황이다. 공수처의 '표적'이 됐던 윤 후보로서는 공수처 제도를 손 볼 명분이 충분한 셈이다.
박 장관이 의원 시절 적극 추진한 '검경수사권 조정'도 일선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치안 서비스 악화를 초래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경찰의 평균 사건 처리 기간은 검경수사권 조정 이전인 재작년 55.6일에서 작년 64.2일로 늘어났고, 불송치 이의신청 및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발생한 수사지연·부실수사에 대한 국민적 불만을 해소하겠다"는 윤 후보의 공약에 제동을 걸 마땅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정치평론가인 강신업 변호사는 "박 장관은 예전부터 강경 발언을 잘하고 전면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향이었다"며 "윤 후보의 사법공약에 아무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평소와는 다른 태도이다"고 꼬집었다.
강 변호사는 이어 "박 장관의 속내도 이재명 후보를 적극 거들고 싶을 것이고,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법무부 장관직은 아랑곳 않고 행동으로 옮겼을 인물"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윤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커 보이니 대립각을 세워봤자 향후 자신이나 당에게 유리할 게 없다는 판단에 몸을 사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