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직 공직자 귀책사유 선거에 국민 혈세가 낭비
국민 여론, 원인 제공 당사자나 소속 정당이 부담
‘국민을 위한 정치’ 운운 헛구호에 국민들은 신물
오는 6월1일 실시되는 지방선거에서 최소 5곳, 최대 10곳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동시에 실시될 예정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이 시·도지사 후보로 선출됨으로써 의원직을 사퇴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불과 24만 여 표차로 패배한 민주당으로서는 설욕의 기회이고, 국민의힘은 취약한 지지기반으로 출발하는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번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경쟁력 있는 현역의원을 차출해 총력전을 펼칠 수밖에 없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하여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보궐선거를 치르는데 국민의 혈세가 낭비된다는 점이다. 국회의원선거를 단독으로 치를 경우, 선거구 당 평균 선거비용은 약 20억원에 이른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여러 선거와 더불어 치름으로써 그 보다는 적게 들겠지만, 적어도 수십억 원의 예산이 추가로 소요될 것이다.
이는 이번 선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실시될 총선 등 전국단위선거에서는 항상 제기될 문제다. 가까이는 2024년 4월에 실시될 제22대 총선에서 일부 지방의원이나 자치단체장들이 사표를 내고 총선에 출마할 것이다. 그러면 그 지역에서 보궐선거를 실시해야 되고, 그 비용을 오롯이 자치단체가 부담해야 한다. 지난해 실시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서울시는 약 571억원을, 부산시는 약 267억원을 각각 부담한 바 있다.
선출직 공직자의 정치적 욕심 때문에, 또는 그들의 귀책사유로 발생된 재‧보궐선거를 치르는데 애꿎은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임기동안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해야 할 의무(유권자와의 약속)를 저버린 당사자에게 책임을 지워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이 부분에 대해서 전혀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고 당연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재·보궐선거 때마다 그 관리비용을 원인제공자에게 부담시켜야 된다는 주장은 계속 제기되어 왔다. 필자 역시 ‘보궐선거 원인제공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의 칼럼을 20년 11월 본지에 게재한 바 있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2020년 11월3일 미디어 리서치가 발표한 ‘재·보궐선거비용은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재·보궐선거를 초래한 당선자나 정당’ 42.2%, ‘국민세금’ 22.9%, ‘중도 사퇴한 후보를 공천한 정당’ 14.0%, ‘중도사퇴하고 출마한 후보’ 12.8%로 각각 나타났다. 국가가 부담하기 보다는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나 소속 정당이 부담해야 된다는 응답이 압도적임을 알 수 있다(자세한 내용은 미디어리서치 홈페이지 참조).
그러나 현실적으로 막대한 선거비용을 개인에게 전부 부담시키기는 쉽지 않다. 정당 또한 마찬가지다. ‘선거에 관한 경비는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당 또는 후보자에게 부담시킬 수 없다’는 헌법규정에도 위반될 소지가 있다. 그렇다고 하여 지금처럼 오롯이 국민의 세금으로만 부담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 따라서 적절한 정도로 책임을 묻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공직선거법에서는 당선인이 지출한 선거비용을 선거 후에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보전해 주도록 하면서, 선거법 위반으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아 당선이 무효로 된 경우에는 보전 받은 전액을 반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개정하여 당선 무효 뿐만 아니라 임기 중 사직하거나 피선거권을 상실함으로써 그 직을 잃은 경우에도 보전 받은 전액을 반환하도록 보완하면 될 것이다. 정당의 경우에는 선거 때 지급받은 선거보조금의 일부를 회수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민주당은 대통령선거를 목전에 둔 지난 1월에 정당혁신안의 하나로 언감생심 ‘국회의원 국민소환제’까지 추진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런 민주당이 이 정도의 작은 개혁을 망설일 이유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힘도 이제 집권당으로서 정치변화를 주도할 책임이 있다.
양대 정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위 제안을 공약으로 채택하고, 선거법 개정 시 우선적으로 입법해 주기를 촉구한다. 선거 때마다 말로만 내세우는 정치개혁, ‘국민을 위한 정치’ 운운하는 헛구호에 정작 국민들은 신물이 날 지경이다.
글/이기선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