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우려…한은, 1년 반 만에 기준금리 동결
추가 인상 여지 남았지만, 충격 여파 크지 않아
집값 하락·관망세 지속…매매거래, 더딘 회복세 전망
멈출 줄 모르던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행보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여전히 물가가 높은 수준이지만 경기 부진이 심화하는 만큼 기준금리 추가 인상에 따른 침체 우려가 더 크다고 판단한 모습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23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0%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로써 2021년 8월부터 올 1월까지 이어진 기준금리 인상 흐름이 약 1년 6개월 만에 멈췄다. 지난해 4월부터 7차례 연속 유례는 인상 행진에도 제동이 걸렸다.
고물가 기조 속에서도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데는 지난해 4분기 한국 경제가 역성장하는 등 경기 침체 우려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어서다. 수줄 부진으로 올 1분기 전망도 밝지 않은 가운데 추가 금리 인상이 민간의 소비·투자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고 봤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해 4월 이후 매 금통위 회의 시 기준금리를 인상해오다 금번에 동결한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불확실성을 고려한 결정"이라며 "기준금리 동결을 인상 기조가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한은의 긴축이 일단 멈추면서 부동산시장 침체 흐름도 어느 정도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지난해와 달리 금리 인상으로 인한 충격 여파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는 "미 연준으로 (금리를) 많이 올려도 연 3.75% 정도가 상한이 될 것으로 보이고 대출금리는 현재 수준보다 더 높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안에 집값이 반등할 여지는 있으나 그동안 많이 떨어진 데 따른 기저효과일 것"이라며 "당분간 조정이 계속되는 가운데 느리지만 규제 완화 효과가 나타나며 거래 회복이 이어질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기준금리 동결로 금리에 대한 불확실성이 개선되면서 수요자의 시장금리 수준에 대한 적응력이 높아질 것"이라며 "매매의사결정에 여전히 금리가 중요하게 작용하겠지만, 지난해처럼 핵심 변수로 작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전망했다.
지난해 계속된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부동산시장은 거래 절벽, 미분양 급증 등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집값 하락세도 가팔랐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주택(아파트·연립·단독주택) 가격은 전국이 4.68% 떨어졌다. 부동산원이 집값 통계를 산출한 2003년 이래 20년 만에 가장 큰 낙폭이다. 같은 기준 서울은 4.75%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파트의 경우 전국 7.56%, 수도권 9.68%, 서울 7.70% 각각 하락했다.
청약열기도 차갑게 식으면서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6만8107가구로 9년 4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에 정부는 시장 연착륙을 꾀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규제를 풀기 시작했다. 지난달에는 서울 강남 3구와 용산을 제외한 전역의 규제지역을 해제하고, 재건축 규제 완화 및 분양제도 개선에도 나선 바 있다.
규제 완화 기대감이 반영돼 지난해 7월부터 줄곧 1000건을 밑돌던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1월 들어 1375건(23일 기준)으로 반년 만에 급증했다. 다만 시장 관망세 속 매도-매수자 간 가격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급매 등 하락거래가 주를 이룬다는 점에서 집값 하방 압력은 여전하다.
윤지해 팀장은 "2월은 특례보금자리론 효과가 배가 돼 매매거래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연착륙 가능성이 기존보다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며 "집값은 상당 수준 물건 소화가 진행될 필요가 있어 낙폭을 줄이는 정도에서 하락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서울, 경기 등 집값이 급락한 수도권 지역 중심으로 1월 매매거래량이 늘긴 했으나 평년치 대비 여전히 부진한 수준"이라며 "마무리 수순에 접어든 금리 인상기나 정부 규제 완화 등은 매도자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쳐서 호가 조정 및 급매 처분 저항이 커지고 매도 유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김 소장은 또 "지난해보다 집값 낙폭은 둔화되겠지만 연내 약세 흐름은 이어질 전망"이라며 "지난해 금리 인상 폭을 감안할 때 그 영향은 향후 2~3년까지도 지속될 수 있다고 보고, 금융비용 부담에 따라 갭투자자나 영끌투자 매물이 얼마나 나올지가 거래 회복세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