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육군이 홍범도 흉상 이전 '파란불' 켠 이유 [2023 국감]


입력 2023.10.24 01:00 수정 2023.10.24 23:16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투철한 생도 대적관 확립

육사 정체성과의 연관성 강조

절차적 정당성에도 '의구심'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자료사진) ⓒ뉴시스

육군은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추진 배경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역사·이념 논쟁에 군 당국이 연루됐다는 일각의 주장에 선을 그었다. 생도들의 투철한 대적관 확립 등 육사 정체성을 다잡는 한편, 정당성이 빈약했던 흉상 설치 과정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은 23일 충남 계룡대에서 진행된 국회 국방위원회의 육군본부 대상 국정감사에서 "홍범도 장군의 항일투쟁 독립운동에 대한 업적은 분명히 위대하고, 존경했기 때문에 (국가에서) 훈장을 준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육사의 흉상 설치 문제는 좀 다른 입장이 있다"고 말했다.


홍 장군 흉상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 2018년 3·1절 99주년을 맞아 육사에 설치됐다. 홍 장군 외에도 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이회영 선생 등 일제강점기 무장독립운동가 5명의 흉상이 함께 마련됐다.


박 총장은 "육사 설립 취지나 교육 목적이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한, 대적관으로 무장된 생도"라며 "(육사 내 홍 장군 흉상이) 공산주의 건설을 최종 목표로 하는 북한과 싸워야 할 우리 생도들의 대적관을 좀 약화시키는 것 아닌가 한다"고 밝혔다. 홍 장군이 옛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이력이 있는 만큼, 육사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실제로 박 총장은 "엄중한 안보 현실 속에서 공산주의 이력이 있는 분의 흉상을 특별히 세우는 것이 과연 생도들의 교육과 육사 설립 취지에 맞느냐"라며 "흉상 하나만 보지 마시라. 대적관을 흐리게 만든, 또 육사 정체성을 흔드는 일들을 바로잡는 일환"이라고 밝혔다.


특히 "흉상 이전은 육사 자체의 종합발전계획에 따라 추진하는 것"이라며 "(국방부) 장관이나 대통령 등 특정인 지시로 이뤄지는 게 절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윤석열 정부 출범 전인 지난해 3월, 육사 지휘부가 참여한 '브레인스토밍'에서 관련 논의가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권영호 육사교장(중장)은 "원래 설치 당시부터 '특정 인물'에 대한 논란과 위치 적절성 논란이 있던 것으로 들었다"며 "2022년 초부터 학교에서 특히 논란이 지속돼 같은 해 11월에 (흉상 이전을) 추가 과제로 선정했다고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23일 충남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육군본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권영호 육군사관학교장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관련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은 박정환 육군참모총장. ⓒ뉴시스
육군총장 "흉상 설치 급하게 추진"
與 "육사 외부서 흉상 설치 주도"


무엇보다 흉상 설립은 우리 군의 '뿌리'와 연관될 수 있는 문제인 만큼, 숙의 과정을 거쳤어야 한다는 게 군 당국 판단이다.


독립군·광복군을 국군 '모체'로 인정하는 것과 관련 정신을 계승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군 당국은 군사영어학교·국방경비대사관학교 등을 거쳐 오늘날의 육사가 출범했다는 입장이다.


박 총장은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하듯 (우리 군이) 임시정부의 군대인 독립군과 광복군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면서도 "국군은 광복과 동시에 태동했고, 1948년에 정식 출범했다"고 말했다.


그는 흉상 설치가 △관련 논의 개시 1개월 반 만에 이뤄졌다는 점 △비예산 사업으로 진행됐다는 점 △위원회 등 관련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언급하며 "좀 급하게 추진된 것은 맞는 것 같다"고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여권은 흉상 설치가 졸속으로 추진돼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쏟아냈다.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2017년 8월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독립군 역사를 우리 군 역사로 편입시키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며 "대통령 지시사항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검토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정책을 추진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흉상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의원이 국방부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육사가 흉상 설치를 공식 검토하기 시작한 시점은 2018년 1월 중순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흉상 제작 협조 공문을 발송한 시점(1월 18일)이 관련 인물 토의 시점(1월 19일)보다 빠르다는 데 있다. 어떤 인물의 흉상을 세울지 결정도 하지 않은 채 사실상 제작부터 의뢰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이 같은 해 3월 육사 졸업식에 직접 참석해 "흉상 앞에서 '모자 던지기' 행사까지 진행했다"며 "탁현민 당시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연출했다고 알려져 있다. 일련의 과정을 봤을 때 학교 외부에서 흉상 설치를 주도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 ⓒ뉴시스
野, 흉상 철거 백지화를
협치 조건으로 내걸어


한편 야당은 홍 장관 흉상 이전 백지화를 협치 조건으로 내세우며 강경 입장을 재확인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정 기조 전환과 협치를 시작할 수 있는 사안이 바로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백지화와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된 채상병 특검법의 여야 합의 처리"라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두 사안 모두 진보와 보수를 떠나 대다수 국민이 요구하고 있는 일"이라며 "민심에 귀를 기울이겠다면 당장 실천해야 한다"고 밝혔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