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AI 시장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꼽혀…사람 외형+AI로 인간 노동력 대체
엔비디아, 테슬라, 현대차, 삼성, LG 등 지분 투자 및 SW+HW 역량 개발
안전성, 제조원가, SW 핵심 기술 등 확보 관건…"사회 윤리적 제도 마련도 논의해야"
"AI(인공지능)의 다음 물결은 물리적 AI(Physical AI)." 지난 6월 대만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4' 행사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생성형 AI에 이어 물리 AI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며 휴머노이드(Humanoid) 로봇을 언급했다. 사람 보다 강력한 몸, AI 훈련으로 지능화된 머리가 만나 미래 경제·산업의 한 축을 담당할 것이라는 기대다.
저출산·고령화 시대, 인간의 노동력을 일부 대체할 휴머노이드 로봇 관심이 급증하면서 엔비디아를 비롯해 테슬라, 아마존, 삼성, 현대차 등 여러 글로벌 기업들이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이 시장에서 한국이 경쟁 우위를 갖추려면 기업 기술 개발 뿐 아니라 정부의 연구개발(R&D)·투자 지원이 함께 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31일 엔비디아는 AI 차세대 동력으로 로봇을 점찍고 수 조원대 투자를 진행중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미래 성장을 주도하기 위해 로봇 공학에 베팅하는 엔비디아' 제목의 기사를 통해 내년 상반기 엔비디아가 휴머노이드 로봇용 소형 컴퓨터 '젯슨 토르'(Jetson Thor)를 출시한다고 전했다.
젯슨 토르는 로봇·드론 등 분야에서 AI 작업을 수행하는 컴퓨터다. 로봇 외형 보다는 기능에 특화된 AI 소프트웨어, 로봇 반도체 등 '풀 스택' 솔루션을 공급함으로써 다가오는 로봇 대중화 시대를 대비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앞서 엔비디아는 지난 2월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와 함께 26억 달러 규모의 휴머노이드 로봇 회사 '피규어 AI'에 투자한 바 있다. 3월에는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위한 AI 플랫폼 '그루트'를 공개하기도 했다.
엔비디아 로봇 부문 부사장 디푸 탤러는 FT에 "물리적 AI와 로봇 공학의 챗GPT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며 로봇 시장이 티핑 포인트(급격한 전환점)에 도달했다고 언급했다. 물리적 AI는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고 상호 작용할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한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로봇공학과 AI 기술이 결합된 '인간의 외모나 행동을 모방한 로봇'으로 2족 보행을 하지 않는 바퀴주행형, 인간과의 의사소통에 특화된 감정소통형, 두 발로 걷는 2족보행형 등으로 나뉜다. 주요 IT 기업이 개발에 집중하는 대표 유형은 2족보행형으로 범용성이 높지만 제조원가와 개발난도 역시 높다는 단점이 있다.
저출산·고령화 시대로 로봇이 인간 노동력 일부를 담당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면서 세계 로봇 산업 규모는 급속도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인포메이션(GII)에 따르면 전 세계 산업용 로봇 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 323억2000만 달러(47조6000억원)로, 오는 2030년에는 885억5000만 달러(130조3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성장성을 겨냥해 엔비디아 뿐 아니라 테슬라, 아마존 등 주요 빅테크들은 앞다퉈 휴머노이드 개발 및 투자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2021년 '옵티머스'라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처음 선보인 테슬라는 지난해 12월 '옵티머스 2세대'를 공개했다. 기존 모델 보다 무게는 10kg 가볍고, 보행 속도는 30% 빨라진 것이 특징이다. 테슬라는 자사 기가팩토리에서 시범 투입한 이후 오는 2026년부터 외부 판매용으로 대량생산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미국 애질리티 로보틱스(Agility Robotics)의 디짓(Digit)은 최초의 양산형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아마존 물류센터에 투입됐다. 애질리티는 연간 1만대 규모의 생산 공장을 통해 기업 고객 뿐 아니라 일반 고객까지 휴머노이드 로봇을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중국은 유비테크, 유니트리로보틱스 등이, 일본은 토요타자동차, 가와사키중공업 등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공개했거나 프로토타입을 연구중이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대표적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지난 4월 '아틀라스 2세대' 모델을 공개했다. 영상에서는 로봇이 바닥에 누워있다가 관절을 비틀어 일어나고 몸통도 360도로 회전하며 걸어가는 모습이 담겼다.
6개월여 만인 11월에 추가로 공개한 영상에서는 신형 아틀라스가 머신 러닝 비전 모델을 활용해 부품의 위치와 종류를 인식하고 정확한 파지점을 판단, 물체를 집어 들어 이동식 보관함의 각 부품별 수납 공간에 꼽아 넣는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영상은 아틀라스가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자율적인 작업 능력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특히 진보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생산 현장 투입 시점도 빠르게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휴머노이드 로봇 대전에 참전했다. 이날 삼성전자는 로봇 전문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당초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지분 14.7%를 들고 있던 삼성은, 콜옵션 행사로 지분을 35.0%로 확대해 2대 주주에서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삼성은 자사의 AI, 소프트웨어 기술에 레인보우로보틱스의 로봇 기술을 접목해 지능형 첨단 휴머노이드 개발을 가속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대표이사 직속의 미래로봇추진단을 신설했다. 미래로봇추진단은 휴머노이드를 포함한 미래로봇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조직으로, 미래로봇 원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삼성은 레인보우로보틱스의 협동로봇, 양팔로봇, 자율이동로봇 등을 자사의 제조, 물류 등 업무 자동화에도 활용하기로 했다. 현장에 투입되는 로봇을 통해 작업 효율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LG전자도 로봇을 신성장동력으로 일찌감치 낙점하고 역량을 확대중이다. 2018년 인수한 로보스타의 대표 로봇인 '로봇팔', 물류 창고 등에서 대량 물건을 운반하는 데 특화된 LG 클로이 캐리봇(CLOi CarryBot) 등이 대표적이다.
로보티즈는 2019년 국내 최초 실외 자율주행로봇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실증 특례를 획득한 기업이다. 최근 실외 자율주행 로봇의 보도통행 가능성 등이 제기되면서 배송 로봇 및 자율주행 로봇산업 분야에서의 사업 확대가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LG전자는 지난 2022년 말 경북 구미시에 있는 LG퓨처파크(LG Future Park)에 로봇 생산 라인을 신설하고 클로이 로봇을 자체 생산 중이다. 생산 역량 내재화를 통해 품질 관리를 강화하는 한편, 수요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사업을 빠르게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미래 성장성에 글로벌 기업들이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는 있지만 로봇 대중화 시대로 성큼 다가서기 위해서는 안전성, 낮은 제조원가, 완제품 제조역량, SW 핵심 기술 등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2030년 25만6000대, 2035년 138만대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부품가 인하, LLM 등 AI 기술 발전 등에 힘입어 제조원가는 2022년 25만 달러(3억7000만원)에서 2030년에는 15만 달러(2억2000만원)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호주 투자은행 맥쿼리는 2030년 116만대에서 2035년 942만대로 보급률이 확대되고 대당 가격도 원가절감 및 규모의 경제 등으로 2025년 7만4000 달러(1억원)에서 2035년 2만2000 달러(3200만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등은 'AI 휴머노이드 로봇 동향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의 범용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로봇이 물리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임바디드 AI'(Embodied AI)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AI 기술이 핵심 경쟁력이자 차별화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휴머노이드 지능화 뿐 아니라 핵심 부품 소재 원가절감을 낮추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봤다. 그러려면 소재 국내 자급률을 높이고 전문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기원은 "대기업의 경우 장기적으로 부품 계열사 내재화도 검토 가능한 옵션 중 하나"라면서 "저숙련 일자리 대체에 따른 노동자 반발도 예상되는 만큼 휴머노이드를 우리 사회에 도입하기 위해 필요한 법적·사회적·윤리적 제도 마련 역시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