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인, 처음 만난 사람과 몸싸움 후 쓰러져 급성심근경색 사망…폭행치사 혐의 무죄
법조계 "폭행치사 성립, 폭행-사망 인과관계 인정돼야…사망 결과도 미리 예견 필요"
"처음 만난 사이라 질환 여부 알 수 없어…폭행도 사망 초래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 것"
"예측할 수 없는 결과까지 책임 물을 수 없어 무죄…'결과적 가중범' 법리상 판결 마땅"
처음 만난 사람과 몸싸움을 벌이다 상대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을 경우 폭행치사로 볼 수 없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법조계에선 폭행치사 혐의가 인정되려면 가해자가 피해자의 사망 결과를 미리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서로 처음 만난 사이라 질환 여부를 알 수 없고, 폭행의 정도가 사망을 초래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예견 가능성'이 없었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결과적 가중범 법리상 마땅한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달 20일 폭행치사 혐의로 기소된 A(60)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지난 2023년 7월 한 도로에서 트럭을 몰고 가던 중 승용차 앞으로 끼어드는 과정에서 피해자 B씨와 시비가 붙자 얼굴을 수회 때리고 넘어트려 가슴을 누르는 등 폭행을 가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는 폭행을 당한 후 도로를 걸어가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구급대가 심정지 상태였던 B씨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재판에선 폭행치사죄 해당 여부가 쟁점이 됐다. 폭행치사죄가 인정되려면 가해자가 피해자를 폭행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예견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A씨는 폭행 당시 피해자가 사망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1심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폭행치사 혐의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피해자에게 가한 물리적 외력만으로는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없었고, 또 심근경색으로 사망할 것이라 통상적으로 예견할 수 없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가한 폭행의 정도를 경미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으나, 통상적으로 사망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정도로 중한 것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다만 1심 재판부는 폭행 혐의는 인정해 A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후 검찰은 1심 결과에 불복했으나 2심은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도 "원심의 판단에 상고 이유 주장과 같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폭행치사죄의 사망 결과에 대한 예견 가능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전문영 변호사(법무법인 YK)는 "폭행치사죄가 성립하려면 폭행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할 뿐 아니라, 폭행 당시 피해자의 사망의 결과를 미리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 사건의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가 그 날 처음 만난 사이여서 가해자가 피해자의 심장질환을 알 수 없었고, 폭행의 정도가 사망을 초래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예견 가능성이 없었다고 본 것이다"고 설명했다.
검사 출신 안영림 변호사(법무법인 선승)는 "폭행치사, 상해치사와 같은 결과적 가중범의 경우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중한 결과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폭행은 고의로 했지만 그로 인해 죽음에 이르리라는 결과까지 용인한 것은 아니라 살인죄가 아니라 폭행치사로 기소됐고, 재판에서 치사라는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주장한 사안이다"며 "이런 경우 폭행 정도에 비해 중한 결과가 발생한 상황이므로 치사라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는지가 쟁점이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만난 사이라서 기존 병력을 알 수 없었으므로 치사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단이 나온 것"이라며 "보통 폭행하더라도 경미한 폭행일 경우 심근경색까지 이어지지는 않으므로 불측(不測)의 결과까지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봐서 무죄가 선고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과적 가중범 법리상 마땅한 판결"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