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유·의료·주류 광고는 방송만 금지… “차별적 규제, 소비자 알권리 침해”
수요 기반 확대가 관건… 금지품목 규제 완화 통한 산업정책 전환 필요
내수 위축, 미디어 환경 변화 등으로 국내 방송광고 시장이 쪼그라들고 있다. 여기에 시대 흐름과 맞지 않는 규제로 시장 위축이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는 현행 포지티브 규제체계를 네거티브 규제체계로 전환해 방송광고산업이 다양한 수요 기반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3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광고학회 주최로 열린 '크로스미디어 시대 TV 광고 경쟁력 강화: 규제 완화 필요성과 개선 방안' 세미나에서 이희복 상지대학교 교수는 '방송광고 규제 개선 필요성과 개선방안' 발제를 통해 위축된 방송 광고 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규제 필요성이 낮은 품목부터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방송광고 시장 3조252억…전년비 11% 감소
이 교수에 따르면 한국 광고 시장은 2023년(16조5410억원)에서 지난해 17조원으로 2.8% 증가가 예상된다. 총광고비 증가세와 달리 작년 방송광고 시장은 2023년 대비 10.8% 줄어든 3조252억원에 그칠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이용자 시청 행태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중심이 되고 있다. 15~59세 남녀 10명 중 8명이 숏폼 콘텐츠를 시청하면서 전통 방송과 방송광고는 위기 상황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방송산업은 콘텐츠 공장, 방송광고 공장, 공론의 토론장, 한류 현장의 역할을 수행해온 공공재"라고 주장하며 광고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 품목으로 의료광고를 예로 들었다. 현재 의료광고는 방송을 제외한 모든 매체에서 가능하다.
교통광고인 지하철광고, 버스 옆면광고, 버스 음성광고 뿐 아니라 옥외광고인 전광판 광고, 유튜브 광고, 신문 광고, 팟캐스트, 인스타그램 등에서 광고가 가능지만 방송광고는 제외된다. 2007년 국회 의료법 개정과정에서 '광고효과가 큰' 방송광고의 의료광고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의료광고 방송을 허용하되 의료광고 사전심의, 의료광고 자율심의 기구(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화, 대한한의사협회), 사후 모니터링, 처벌과 처분 기준 등 보완장치를 마련해 통제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의료·패스트푸드·분유·주류 제한…70·80년대 인식으로 현 방송광고 규제
햄버거, 피자 등 고열량·저영양 식품광고 규제도 지적했다. 현행 시간대 규제의 경우 고열량, 저영양식품과 고카페인 함유식품은 오후5시부터 7시까지 모든 TV에서 광고가 금지된다. 어린이를 주 시청대상으로 하는 방송프로그램의 중간광고도 마찬가지다. 생활패턴의 변화와 신체활동 감소, 식품 섭취량 증가로 비만과 건강을 해친다는 우려에서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비만과 방송광고의 상관관계 입증이 불가하며 TV시청에서 유튜브로로 몰리면서 어린이 TV 시청률은 0.1%대에 불과해 실효성과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TV 광고시간대 제한을 폐지하는 대신 경고문구를 표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조제분유, 조제우유 등 조제유류도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조제유류 광고 금지는 세계보건기구(WHO)의 1981년 권고사항으로 식품관련 법 시행규칙에 반영됐다. 당시 모유 대체품 판촉이 모유수유의 보호와 증진을 방해해 모유수유 감소 현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이 따랐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기본권 제한의 법률적 근거가 미흡하며, 국가 위상에 부합하지도 않고, 저출산 대응 방향과 충돌하며, 국내 조제유류 산업 역차별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내 산업의 보호와 공정한 경쟁환경 조성을 위해 조제유류 광고 규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주류광고 제한도 문제 삼았다.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에 따라 17도 이상의 주류광고를 방송광고에서 금지하고 있다. 16.9도 이하의 경우에도 방송광고는 밤 시간(TV 10시 이후 가능, 라디오 5시 이후 금지)을 이용해 방송 시간대를 제한받는다.
그러나 방송을 제외한 인쇄와 온라인, 옥외(제한시간 있으나 도수제한 없음) 매체는 주류 광고 규제를 받지 않는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법익 균형성과 과잉금지 원칙 등을 위배하므로 국민건강증진법과 방송광고심의 규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조제유류(식품표시광고법), 고열량·저영양식품(어린이식생활법), 유료전화정보서비스(방송광고심의에 관한 규정) 등 실효성이 없거나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가 잔존한다"면서 "규제 필요성이 낮은 품목부터 단계적으로 완화를 검토해야 하며 정부에서도 조제유류 및 고열량·저영양 식품 광고 규제가 실효성이 없거나 시대의 맞지 않은 규제임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급 과잉, 수요 부족…비효율 구조에 갇힌 방송광고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은 '국내 방송미디어 산업의 위기와 방송광고 규제 개선 방향' 발제에서 "초과공급과 저효율 구조 속에서 경직된 규제는 산업 회복을 저해하는 직접적인 요인"이라며 규제 체계 전반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방송광고 위기의 원인으로 이 위원은 방송광고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 시대에 뒤처진 규제 두 가지를 지목했다.
시장 문제로 이 위원은 "규제로 공급이 매우 비탄력적이고, 광고단가가 사실상 고정돼있는 상황에서 온라인 및 모바일 광고 성장으로 수요가 크게 감소했다. 이에 따라 초과공급& 보너스중심의 시장이 됐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자동차, 금융, 통신, 식품, 뷰티 등 국내 주요 광고주는 대부분 독과점 사업자 또는 글로벌 기업으로 광고 집행유인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방송광고 시장 공급은 넘치고 효과는 낮은 ‘비효율 구조’에 빠져 있다고 이 전문위원은 말했다.
그는 "과거 방송광고에 초과 수요가 존재하던 2000년 방송법 및 2012년 렙법 체제의 규제가 여전히 유지되면서 방송광고의 효율성 개선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중간광고 등 효과성 높은 광고가 도입되기는 했으나 초과공급 시장 상황에서 도입돼 효과가 반감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 같은 시장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상황에 맞는 규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이 위원은 주장했다.
“방송만 금지”… 금지품목 규제는 시대 뒤처진 ‘족쇄’
이 위원은 가장 큰 문제로 방송광고에만 적용되는 ‘포괄적 금지 품목’ 규제를 들었다.
현재 방송에서는 조제분유, 수유용품, 17도 이상 주류, 1·2차 의료기관, 사설탐정, 점술·미신 관련 상품, 성 관련 용품 등 다양한 광고가 일괄적으로 금지돼 있다. 이는 방송법 시행령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규정에 따른 조치지만 변화한 미디어 환경과는 괴리가 크다는 설명이다.
반면 유튜브나 OTT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동일 품목이 자유롭게 광고되거나 콘텐츠 형태로 노출되고 있다. 이 같은 이중 규제는 방송만을 과도하게 제한해 산업 경쟁력을 저해하는 동시에 국민의 알권리와 생명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이 위원은 지적했다.
또한 전문의약품에 대한 객관적이고 검증된 정보에 대한 접근을 막음으로써 오히려 소비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제기했다.
이종관 수석전문위원은 “수요 기반이 위축된 상황에서는 공급 확대만으로는 시장 회복이 어렵다”며 “광고 수요 확대를 위한 규제 개선과 심의 기준의 현실화가 시급하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방송광고 정책이 공공 정책적 접근에서 산업정책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규제, 네거티브로 전환해야…특정 시간대 조건부 허용도
방송광고 금지 품목 규제 개선을 중심으로 ▲현행 포지티브 방식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 ▲사회적 수용성이 높은 품목부터의 단계적 완화 ▲특정 시간대‧지역 매체 한정한 조건부 허용 ▲타겟형 광고가 가능한 신유형 광고 적극 도입 등이 주요 개선 방향으로 제시됐다.
이러한 규제 완화는 시청자와 소비자 인식을 조사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한 뒤 진행해야 하며 보편적 규범이나 도덕률에 반하는 품목에 대해서는 기존 규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케이블TV 관계자는 “현행 방송광고 규제는 유료방송 사업자의 시장 경쟁력 확보에 실질적인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광고 매출이 둔화된 시장 환경에서는 콘텐츠 제작에 대한 투자 부담도 점차 커지고 있다”며 “양질의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제작·공급하기 위해서는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부합하는 유연하고 합리적인 규제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국광고학회장인 최세정 고려대 교수는 인사말을 통해 "방송 광고가 어려워지면서 방송 광고와 연계된 디지털 광고도 힘들어하고 있다. 그러나 규제 때문에 광고 산업이 아쉬워하고 있다. 단순 형평성 문제라기 보다, 디지털 광고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방송광고에서도 가능해져야 효과적인 광고 캠페인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