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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송창식 ‘NO!'라고 할 수 있는 자유


입력 2013.06.06 11:59 수정 2013.06.07 09:45        데일리안 스포츠 = 이경현 객원기자

‘등판 거부’ 한국과 미국 야구 문화 차이

태업, 부상 투혼, 정신력과는 또 다른 얘기

류현진 ⓒ 연합뉴스

한국과 미국 야구문화 차이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 중 하나는 '선수가 자신의 주장을 분명히 밝힐 수 있느냐'다.

가령, 한국에서 선수기용과 활용법은 전적으로 감독의 권한이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선수가 지도자 앞에서 강하게 자기 주장을 하거나 감독 지시에 ‘NO!'라고 과감하게 의사를 표시하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 문화, 특히 메이저리그는 다르다. 물론 선수기용은 감독 고유권한이지만 선수의 의사를 완전히 무시하고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컨디션과 관련된 문제라면 선수가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시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아직도 한국 스포츠에 남아있는 잘못된 고정 관념 중 하나가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출전을 강행하고, 이를 ‘정신력’이나 ‘부상투혼’이라는 개념으로 미화되는 정서다.

메이저리그에도 부상투혼은 존재한다. 하지만 정말 큰 경기나 중요한 순간에만 해당된다. 무턱대고 투혼이나 정신력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현대 스포츠는 오히려 자기관리에 소홀한 것을 ‘프로답지 못한 것’으로 인식한다. 여기에는 자기 컨디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출전에만 욕심을 내거나 오히려 팀에 피해를 주는 상황도 포함된다.

박찬호는 과거에 투혼이라는 개념을 잘못 이해해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박찬호는 투수로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팀 사정과 FA를 염두에 두고 허리부상 속에도 출전을 자청했다. 돌아온 것은 부진한 투구로 인한 팀 패배와 함께 여론의 비난뿐이었다.

당시 미국 언론은 박찬호의 부상 투혼보다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출전을 강행한 박찬호의 무리수를 더 지적했다. 박찬호는 FA 대박을 터뜨린 이후에도 무리한 출전으로 허리부상이 악화, 장기적으로 슬럼프에 빠지는 빌미가 됐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무대에 연착륙하고 있는 류현진은 지난 3일(한국시각) 예정됐던 콜로라와의 원정경기 선발등판을 취소했다. 앞선 등판 당시 타구를 맞은 왼쪽 발에 부상했고, 빨리 호전되지 않자 다음 등판 시 투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로테이션을 한 차례 건너뛰고 휴식을 택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류현진이 먼저 적극적으로 휴식 의지를 코칭스태프에 전달했다는 점이다.

류현진은 국내 시절, 큰 부상이 아니면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꾸준히 등판했고 그것을 에이스의 책임감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매팅리 감독과 다저스 코칭스태프들이 가급적 등판을 원하는 분위기에서도 과감히 'NO!'를 택했다. 국내였다면 투구를 못할 정도의 부상이 아니라 논란이 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류현진은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의 무리한 등판은 오히려 자신과 팀 모두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매팅리 감독도 류현진 의사를 존중했다. 다저스로서는 1승이 아쉽지만, 팀의 소중한 선발자원을 아끼고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류현진 선택 역시 이기적인 것도, 정신력이 나약한 것도 아니다. 냉철한 상황판단을 바탕으로 가끔씩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류현진 원 소속팀 한화는 최근 ‘송창식 혹사 논란’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올 시즌 한화의 전천후 마당쇠로 활약하는 송창식은 사실상 보직 구분 없이 중간계투와 마무리를 오가며 2이닝 이상 소화나 연투도 다반사다. 승패나 세이브 상황과 관련 없는 경기에 등판한 경우도 수차례다. 버거씨병을 앓은 전력까지 있는 송창식의 무리한 등판에 대해 비판여론이 일어났지만 아직까지 벤치는 송창식 기용방식에 큰 변화가 없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한국 프로야구에서 감독의 권력은 절대적이다. 모든 지도자들이 선수의 속마음과 사정까지 일일이 알아서 관리해주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더구나 정말 투구하기 힘들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라도 과감히 등판을 거부할만한 선수는 국내 무대에서 쉽게 찾을 수 없다.

팀을 위한 헌신이나 정신력을 요구하는 것도, 그에 걸맞은 관리와 보답을 해줄 때 가능한 얘기다.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선수라도 스스로 ‘NO!'라고 스스로의 의지를 분명히 밝힐 수 있는 문화가 한국야구에도 자리잡아야 한다.

이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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