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공급망 붕괴 우려 속 기술 의존도 축소로 자급화 추진
기술·인력 갖춰져 고전 중인 中과 달리 급성장 전망도
최근 미국과 일본이 잇따라 반도체 자급을 선언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의 자급론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이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최근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자급주의 선언으로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월스르리트저널은 10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정부가 자국 업체 인텔과 대만 파운드리(위탁생산)업체 TSMC와 미국에 공장을 짓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며 인텔과 TSMC 모두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코로나19의 전세계적인 확산으로 핵심 부품인 반도체의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데 따른 것으로 반도체 기술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일본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는 지난 11일 일본 경제산업성이 인텔과 TSMC 등의 생산 및 개발 거점을 자국에 유치하는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붕괴 우려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미·일 양국의 이러한 조치가 국내 반도체 업계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해외 국가들의 자급화 과정에서 현지 공장 증설 등 일부 기회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부정적 영향이 클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업계에서는 미국과 일본 정부의 의도대로 현지에 생산 시설이 구축되면 삼성전자로서는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 전문)업체 고객들을 빼앗기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오는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는 삼성전자로서는 성장을 위해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악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이미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파운드리 공장 ‘S2’를 보유하고 있어 이를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공장 증설에는 상당한 비용이 수반된다는 점에서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자급주의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국내 반도체 업체들에게는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클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파운드리 등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을 끌어올려 D램 등 메모리반도체 중심으로 지나치게 편중돼 있는 실적 구조에 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의 자급선언은 이미 자급화에 나선 중국과도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 2015년 발표한 ‘중국제조 2025’ 정책을 통해 오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제조업 활성화를 목표로 산업고도화 전략의 일환으로 자국 반도체 업체들의 성장을 통한 내재화에 힘을 쏟고 있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자회사로 팹리스업체인 하이실리콘은 보급형 스마트폰 반도체칩 제조 물량을 중국 최대 파운드리업체 SMIC에 몰아주고 있다.
이런 목표에도 현재 중국 반도체 자급률은 20%가 채 안되는 상황으로 올해까지 40%로 높이겠다는 중국 정부의 목표가 실현될지도 미지수다. 반도체 코리아를 따라잡기 위해 기술력과 인력 보강에 부단히 애를 쓰고 있지만 아직 역부족인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의 경우, 이미 기술과 인력이 갖춰진 상태여서 반도체 자급 선언이후 중국에 비해 자급률을 빠르게 높여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반도체 기술과 인력 측면에서 보면 미국과 일본은 중국과는 완전히 다르다”며 “특히 과거와 달리 생산력과 노동력 등을 비교해도 한국과 큰 차이가 없어 미국과 일본의 자급화는 예상보다 빠르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