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 재실사 요구 인수 포기 수순...명분 축적용 시각 우세
채권단 관리 하에 재매각 추진해도 새 인수자 등장 불투명
항공산업 재편 차질로 국가 기간 산업 경쟁력 직격탄 우려
HDC현대산업개발의 재실사 요구로 아시아나항공 인수 무산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는 분위기다. 지난해 빅딜로 관심을 모았지만 노딜로 귀결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채권단 관리 하에 구조조정 단행 후 분리매각이라는 플랜B가 부상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항공업계의 불황이 언제 걷힐지 모르는 상황에서 향후 새로운 인수자 등장 가능성 자체가 미지수여서 불확실성이 크다.
27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재실사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을 두고 사실상 인수합병(M&A)이 무산되는 쪽으로 무게 중심이 기울고 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미 인수 재검토 방침을 밝히며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재협상을 요구해 온 HDC현산이 재실사 요구와 함께 아시아나 인수 지연과 관련된 책임이 금호산업측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어 인수 포기를 위한 명분 축적에 나섰다는 시각이다.
HDC현산은 지난 24일 금호산업에 "계약상 진출 및 보장이 중요한 면에서 진실, 정확하지 않고 명백한 확약 위반 등 거래종결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회신을 보냈다.
이와함께 인수상황 재점검 절차 착수를 위해 8월 중순부터 약 12주간 아시아나항공과 자회사를 재실사하겠다는 입장도 표명했다.
금호산업은 앞서 지난 14일 러시아를 마지막으로 해외에서 기업결합신고가 모두 완료되는 등 인수 계약 선행조건이 마무리됐으니 계약을 종결하자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HDC현산에 보냈었다.
하지만 HDC현산은 이에 대한 답변으로 계약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반대 의견을 표명하면서 재실사 요구까지 추가로 한 것이다.
◆ 7개월째 진척없는 아시아나항공 인수...결국 무산?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지난해 말 양사간 주식매매계약(SPA)이 체결된 이후 만 7개월이 다 되도록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딜 클로징(거래 완료) 보다는 인수 무산으로 추가 기울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해 11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계약 체결 당시만 해도 인수 성사가 유력한 분위기였지만 올 초부터 전 세계에 불어닥친 코로나19가 모든 상황을 바꿔 놓았다.
아시아나항공은 코로나19 여파로 불과 5개월만에 부채가 4조5000억원 증가했고, 부채비율도 올해 1분기 기준 1만6126%로 급증했다. 또 자본총계 역시 지난해 반기 말 대비 1조772억원 감소해 자본잠식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에 HDC현산은 지난달 9일 주식매매계약 체결 당시와 현재 상황이 달라졌다며 인수조건 재협상 요구 카드를 꺼내며 채권단을 압박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후 채권단과의 협상에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이번 재실사 요구도 금호산업이 내용증명을 보내자 이에 대한 답변으로 내놓았다는 점에서 HDC현산의 행보에 의구심을 보이는 시각이 많다.
항공업계에서는 이번 재실사 요구가 재협상을 통한 인수 의지를 드러낸 것이 아닌, 인수 포기를 위한 명분 축적용 카드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재실사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의 악화된 재무상태가 드러나면 손을 떼는 것에 대한 명분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먼저 인수 재협상을 요구했으면서도 소극적으로 대응해 온 HDC현산이 재실사 카드를 꺼내든 것은 사실상 인수를 철회하기 위한 수순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라며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 재실사를 통해 최종 결정을 위한 시간을 벌면서도 부실을 부각시켜 인수 포기를 위한 명분도 강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 채권단 관리 하에 분리매각 이뤄질까...새 인수자 등장 불투명
항공업계에서는 HDC현산이 인수를 포기하게 되면 아시아나항공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 관리 체제 하에 놓일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채권단이 관리하면서 시장 상황을 봐가며 재매각을 추진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단 채권단 관리 체제에서 구조조정을 진행한 뒤 아시아나항공과 자회사인 에어부산과 에어서울 등과 분리매각을 추진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항공산업의 회복이 요원한 상황에서 새로운 인수자 등장 가능성 자체가 불투명해 이러한 플랜B 시나리오가 순탄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찍히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의 인수 포기에 이어 지난해 이뤄진 항공사 인수합병(M&A)이 연달아 무산되면서 항공산업 재편 자체가 어려워져 국가 기간 산업에 큰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제주항공은 앞서 지난 23일 공시를 통해 지난 3월 2일 이스타홀딩스와 체결했던 ‘이스타항공 주식매매계약’을 해제한다고 밝혔다. 이스타항공이 미지급금 해소 등 선결 조건을 이행하지 못해 계약을 해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현재 코로나19로 항공산업이 처한 위기 극복은 물론 이후 다가올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항공산업 재편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필요한데 자칫 시기를 놓쳐 재도약의 기회마저 상실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지난해 체결됐던 항공업계 M&A가 모두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며 “항공산업이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M&A를 통한 항공산업의 재편은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도 이뤄져야 하는 일인데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