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두 前의원, 은행연합회장 공식 출사표 '다크호스 등장'
"업계와 여론 반발이 변수"…'보이지 않는 손' 개입 의혹도
금융권이 금융협회장 차기 인선을 놓고 관피아(관료+마피아)‧정피아(정치인+마피아) 논란으로 뜨겁다. 민간 금융업계를 대표하는 자리에 눈치조차 보지 않고 관료‧정치권 출신들이 명함을 내밀면서 업계 안팎의 따가운 시선 받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손해보험협회와 SGI서울보증 수장으로 관료 출신이 낙점된 데 이어 다른 금융 협회장 후보군에도 관료‧정치권 출신 인사들이 줄줄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아예 관료 출신 현직 협회장이 다른 업계 협회장으로 수평이동하는 인사까지 이뤄졌다.
특히 최대 관심인 은행연합회장 자리에는 민병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 출사표를 던지며 다크호스로 등장했다. 금융권에선 세월호 사태 이후 관피아 근절에 나서며 민간협회장이 상당 부분 업계 몫이 됐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금융시장이 정치권에 휘둘리는 시절이다 보니 정치인까지 협회장에 거론되는 상황이 됐다는 자조섞인 얘기가 나온다.
민 전 의원은 공식 출사표와 함께 은행연합회장으로서 공약까지 내걸었다. 민 전 의원은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은행연합회장 선출을 앞두고'라는 글에서 "국회정무위원장을 하면서 변화하는 시대상에 맞춰 은행의 넥스트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고 대안을 제시해 왔다. 이런 생각에 공감하신 분들이 은행협회장직을 추천해 여기까지 왔다"고 출사표를 냈다.
업계에선 민 전 의원이 공개적으로 은행연합회장직에 도전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이미 내정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3선 국회의원 출신 여당 중진 정치인이 여론의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나선 데에는 확실한 자신감이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금융권에선 협회장 자리를 둘러싼 정권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최근 잇따른 협회장 선임 과정에서 막판 깜짝 인사가 부상하고 유력 후보자가 스스로 물러나는 등 배후 세력이 인사의 퍼즐을 맞추는 듯 한 흐름으로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역대급 슈퍼갑' 등장에 금융권 술렁…"금융당국이 의전해야할 판"
민 전 의원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정무위원장을 지낸 '역대급 슈퍼갑' 출신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피감기관으로 둔 정무위 수장자리는 금융권 권력의 최고봉이나 다름 없다. 불과 5개월 전까지 국회에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이나 윤석헌 금감원장에게 호통과 질타를 했던 인물이다.
민 전 의원이 은행연합회장 자리에 오를 경우, '금융권 왕회장'으로 군림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협회 한 관계자는 "그간 금융당국도 각종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관료 출신 협회장에게 상당히 예우를 갖췄는데, 직전 정무위원장이 오면 의전까지 해줘야 하지 않겠나"라며 "아마 다른 협회장들도 먼저 나와서 전직 정무위원장을 기다리는 장면이 연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 전 의원은 지난 17일 열린 차기 은행연합회장 선출을 위한 2차 은행연합회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김광수 NH농협금융회장, 김병호 전 하나금융지주 부회장, 민병덕 전 KB국민은행장,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 이대훈 전 NH농협은행장, 이정환 주택금융공사 사장 등과 함께 7명의 후보군에 올랐다.
최근 금융협회장 선출 과정에서 불거진 관피아‧정피아 논란에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은 모든 금융협회장을 고사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진웅섭 전 금융감독원장도 손보협회장에 이어 생보협회장 후보를 고사한 바 있다. 전직 관료 출신들의 잇따른 협회장 도전 포기선언으로 업계와 여론의 비판 화살이 민 전 의원에게 쏠리는 분위기다.
은행연합협회 안팎에선 관피아‧정피아가 업계 이익을 대변하기 보다 정권이나 정치권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이나 정치권으로부터 바람막이 역할을 기대하는 업계의 요구와는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내부에서는 쉬쉬하고 있지만, 아예 직접적인 금융경력이 전무한 분들까지 협회장으로 오겠다는 것은 과도하다"면서 "업계와 여론 반발이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협회 관계자는 "외부에서 협회장을 모시더라도 최소한 업계를 이해하고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하는데, 이번엔 너무 막나가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차기 은행연합회장은 오는 23일 은행연합회 정기이사회에서 추대될 예정이다. 이사회가 후보를 추천하면 22개 회원사가 참여하는 총회에서 1사 1표제 투표로 최종 후보를 확정한다. 통상 최종 후보를 단독으로 낸 뒤 추대 형식으로 의견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