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주요 5개국 산업안전 처벌규제 비교...산안법 매우 강력
英 기업과실치사법보다 과도...처벌 강화로 인한 예방 효과 불확실
최근 국회에서 산업 재해 발생시 기업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논의 및 처리 여부에 이목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국내 산업 재해 처벌이 이미 상대적으로 강력하는 지적이 제기됐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만으로도 이미 주요 해외 국가들에 비해 강력한 수준인데다 처벌 강화로 인한 산업재해 예방효과도 불확실하다는 분석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과 미국·영국·일본·독일·프랑스 등 주요 5개국이 시행 중인 산업안전 관련 법률(산안법)을 분석한 결과, 국내의 경우 중대재해법을 별도로 제정하지 않더라도 산업 재해 발생 시 기업 처벌이 매우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16일 밝혔다.
한경연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안전·보건 조치 의무 위반으로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산안법에 따라 사업주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또 근로자 사망이 5년 이내 반복적으로 발생할 경우 형량의 50%를 가중한다.
반면 미국(7000달러 이하 벌금)과 독일(5000유로 이하 벌금), 프랑스(1만 유로 이하 벌금)는 위반 사항에 대해 벌금만 부과했다. 일본(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엔 이하 벌금)과 영국(2년 이하 금고 또는 상한이 없는 벌금)은 징역형을 규정했지만 그 수준이 한국보다 크게 낮았다.
또 산안법 이외 별도의 제정법을 만들어 산업재해 시 기업을 처벌하는 국가는 주요국 중 영국이 유일했다. 하지만 한국의 중대재해법이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보다 처벌 규정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과도하다고 한경연은 지적했다.
중대재해법은 의무·처벌 대상의 범위를 사업주와 대표이사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로 명시해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유해·위험방지 의무 내용도 '생명·신체의 안전 또는 보건상의 위해를 입지 않도록'으로 규정해 너무 모호하고 광범위해 기업이 의무의 범위를 예측하기 어렵다는게 한경연의 설명이다.
반면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은 최고경영진의 중대한 과실이 산업재해 발생의 실질적 원인으로 작용해야만 처벌이 가능해 처벌요건이 엄격하고 제한적이다.
한경연은 처벌 대상이 지나치게 넓다는 점도 지적했다. 한국의 중대재해법은 사망 또는 상해 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법인을 모두 처벌하도록 돼 있지만 영국 기업과실치사법은 사망에 한해서 법인에게만 처벌한다.
또 영국·호주·캐나다 등 산업재해와 관련해 기업 형사처벌을 강화한 국가들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기업 처벌 강화의 산업재해 예방효과가 불확실했다는 것이 한경연의 설명이다.
영국은 근로자 10만명당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기업과실치사법 시행 후인 지난 2009년 0.5명으로 시행 전인 2006년 0.7명보다 감소했으나 2011년부턴 다시 증가세를 보였다. 호주와 캐나다도 기업 처벌강화 이전부터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감소해 처벌강화에 따른 효과가 불명확했다.
처벌 강화 효과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활동 위축과 일자리 감소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국내의 산안법은 주요국보다 처벌 규정이 이미 강력하고 처벌 강화의 산업재해 예방 효과도 불확실했다"며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선 추가적인 법 제정보다는 산업 현장의 효과적인 안전관리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