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 경영 포기·무노조 폐지 등 성과…실효성은 부족
이재용, 준법위 권고 충실히 이행…대국민 약속 강조
불확실성 확대에 경쟁력 하락 우려…회의적 시각 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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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가 출범 1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파격적인 행보와 실효성 논란 등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준법위는 삼성의 준법 문화 안착에 집중한 결과, 삼성에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나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었지만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공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난 삼성에 준법경영 DNA가 이식되는 만큼 재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됐다. ‘뉴삼성’ 도약을 위해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내부 구성원들의 ‘준법문화’ 의지가 확고해진 현시점에서 준법위가 향후 어떠한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편집자 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지난 1년간의 활동은 명과 암이 뚜렷했다는 평가다. 활동 초기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를 이끌어내고 삼성의 무노조 경영 기조를 깨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냈지만 이후에는 실효성이 미흡하다는 지적과 함께 존재가치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최근에는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서 준법위의 활동에 힘을 실어주면서 지적받아왔던 실효성 문제를 극복하고 삼성의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파격적 행보로 이목집중…유의미한 성과
준법위는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가 지난 2019년 10월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이 부회장과 삼성에게 ▲과감한 혁신 ▲내부 준법감시제도 마련 ▲재벌체제 폐해 시정 등 3가지를 주문한 것을 계기로 출범한 조직으로 지난해 2월 5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활동을 본격화했다.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위촉하고 각계의 명망 있는 인사들을 준법위원으로 선임해 철저한 준법감시를 요청했다. 이와 함께 독립적인 위치에서 계속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자율성과 독립성을 전적으로 보장했다.
출범 배경에서 보듯 준법위는 활동 시작 후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우선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과거 총수 일가의 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준법의무를 위반하는 행위가 있었던 점을 이유로 들며 향후 경영권 행사 및 승계에 관해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임을 국민들에게 공표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이 부회장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사태 이후 5년 만에 공식석상에 올라 준법위 권고에 따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특히 무노조 경영과 4세 승계 포기 의사를 밝히는 등 준법문화 안착을 공언하며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 부회장은 이후에도 준법위원들과 소통하며 대국민 사과에서 밝힌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준법위원들과 만나 “지난번 대국민 사과에서 국민들께 약속한 부분은 반드시 지켜나갈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6일에는 준법위 위원들과 7개 관계사 대표이사가 한자리에 모여 향후 준법경영 의지를 다졌다. 이 자리에서 관계사 대표들은 회사 소개와 함께 각 사의 준법경영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보다 책임감을 가지고 준법경영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재판부 실효성 미흡 지적에 명분 퇴색
지속적인 성과를 내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준법위였지만 파기환송심 재판이 끝난 이후 입지가 크게 흔들렸다. 재판부가 실효성 기준이 미흡하다며 이 부회장의 양형에 반영하지 않으면서다.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하라는 재판부의 권고에 따라 출범한 준법위가 오히려 재판부로부터 실효성을 부정당하며 명분이 크게 훼손된 것이다. 이로 인해 준법위 권고에 따라 무노조 경영 폐기 및 4세 승계 포기를 공언한 이 부회장의 노력도 상당부분 허사가 됐다는 의견도 나왔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는 지난달 18일 최종선고기일 당시 준법위가 실효성 기준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발생 가능한 새로운 행동을 선제적으로 감시하지 못할 것이란 설명이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준법감시위 활동이 양형에 반영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실제 준법위는 전문심리위원들로부터 지적받은 ‘준법 위반 리스크 유형화’와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와 총수 등 컨트롤타워 감시 방안 마련’ 등을 완수해내지 못했다.
이때부터 삼성 내부에서도 준법위를 보는 시각이 회의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는 상황에서 준법경영에 매몰돼 자칫 삼성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준법경영은 사법리스크를 미연에 예방하는 순기능을 갖고 있지만 현재와 같은 비상시국에는 오히려 의사 결정을 지연해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를 두고 준법위는 평가에 상관없이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 결과로 실효성을 증명해내겠다는 입장이다.
이 부회장도 구치소에 수감 중인 상황에서 옥중 메시지를 보내 준법위에 힘을 실어줬다. 이부회장은 지난달 21일 변호인을 통해 준법감시위원회의 활동을 계속 지원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위원장과 위원들께는 앞으로도 계속 본연의 역할을 다하여 주실 것을 간곡하게 부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