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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죽을래” 막말에도 막지 못한 ‘관료 발 레임덕’


입력 2021.02.26 09:00 수정 2021.02.26 14:03        데스크 (desk@dailian.co.kr)

복지부동(伏地不動), 무사안일(無事安逸)…생존 위해 유지할 수밖에 없어

문정부, 불확실성 방치하기 보다는 입법 통해 쇄기와 말뚝 박아 놓는 의지

ⓒ데일리안 DB

필자는 박근혜 정부 수년 동안 국민통합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대부분 대통령 직속 기구가 그렇듯, 국민통합위 사무처는 타 부처에서 파견 온 직업 공무원들이 대부분이었고, 정무직 공무원 일부가 간부로 일하는 구조였다. 재미난 것은 파견된 직업 공무원 즉 관료의 직급이었다. 집권 초기에는 서기관, 사무관급이 많았다. 하지만 집권 후반부로 갈수록 주무관이 대세가 됐다. 4~5급에서 6~7급으로 주력이 바뀐 것이었다. 집권 초에는 VIP 관심 부서라 선호했지만, 임기가 다 될 즈음에는 기피 부서가 된 것이다.


국민통합위 같은 한시적 부처만 그런 것은 아니다. 국토부를 예로 들어보자.


박근혜 정부는 ‘뉴 스테이’라는 주거정책을 야심 차게 추진했다. 정부가 아니라 민간 건설업자가 임대주택을 만들고 입주자들이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재산권을 가질 수 있게 한 제도다. 저소득층에 대한 주택공급이 중요한데, LH 등 정부산하기관 중심의 공공개발은 재정적 한계가 있어 추진이 어려웠다(지금도 LH 재정 상황이 심각하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란 평가가 많다). ‘뉴스테이’는 그 대안적 해법으로 창안됐다. 민간 건설사가 사업을 추진하고 국토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원하는 구조다. 집권 초기에 해당 정권 ‘VIP 관심 사업’이었기 때문에 국토부 에이스 관료들이 이 사업을 장악해 추진했다. 하지만 말기가 되자 그들은 다른 부서로 ‘피신’했다. 당연히 추진되던 모든 사업은 국토부 사무실 서랍 속에 갇혀 버렸다. 주택단지 건설은 그 특성상 수년이 걸리는데 정권은 5년에 불과하고, 박근혜 정부는 그 기간도 채우지 못했다. 그러니 해당 사업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민간업자는 손해를 보고 사업을 접어야 했다. 요즘 들어보니, ‘뉴 스테이’ 사업을 담당했던 공무원들은 잠시 다른 부서로 피신했다가 현 정권의 다른 사업의 주무를 맡으며 ‘화려하게’ 복귀했다는 소문이 돈다. 이 또한 시한이 다했지만 또 피하면 그만이다.


관료들은 정권의 향배에 매우 민감하다. 힘이 있으면 고개를 조아리며 줄을 서지만, 힘이 빠지면 미련 없이 자리를 피하고 맡은 정책을 접는다. 요즘 기사들을 보니 문재인 정권도 예외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관료의 벽에 부딪히고 있다.


여권이 야심 차게 밀어붙이던 가덕도 신공항 사업에 대해 정부 부처들이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주무 담당인 국토부가 먼저 운을 땠다. “가덕도 바다 수심이 깊고 파도도 강하다”며 우려를 표했다. 예산이 예측했던 것보다 많이 들 것이란 이야기다. ‘지반침하도 우려’라며 안전 문제도 제기했다. 생태계 훼손 우려도 언급했다. 국토부에 이어 기재부도 거들었다. ‘공항 건설을 위한 세금 감면’은 조세특례제한법과 배치된다는 것이다. 또 ‘예비타당성 조사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도 했다. 이에 질세라 법무부도 나섰다. ‘가덕도 특혜는 적법절차 위해 우려’가 있다며, ‘재정법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는 법 조항 등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냈다. 현 정권이 주도하고 야당이 끌려 들어간 국책사업에 관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현상이다.


국민 사이에 사업 자체에 대한 불안도 커졌지만, 그보다 더 주목되는 현상은 ‘드디어 레임덕에 접어든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다. 관료들이 권력의 향방에 얼마나 민감한 지는 전술한 대로다. 그런 관료들이 정권이 공을 들여 추진하는 사업을 가로막는다는 것은 그만큼 권력이 약해졌다는 증거로 해석됐다. 그런데 단순히 권력 약화 문제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다. 출렁거리기는 하지만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가 일정 정도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관료는 보신(保身)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진다. 그래서 복지부동(伏地不動), 무사안일(無事安逸)이란 비난을 들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다. 그러니 무작정 비난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그들의 생존권에 빨간불이 켜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탈원전 정책’으로 야기된 산업부 관료들의 법적 책임의 문제다. 해당 산업부 공무원들은 장관의 말을 믿고 사업을 추진했고, 상부의 지시를 받아 자료를 삭제했을 것이다. 공무원의 행태를 볼 때 확실한 뒷배가 없다면 그런 위험한 일을 벌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내림’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행위가 있을 때 까지 ‘윗선’은 그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기소되고 구속됐다. 관료사회는 깜짝 놀랐을 것이다. 윗선만 믿고 무리를 하면 범죄자가 되어 옷을 벗고 연금도 날아갈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게 했다. 그러니 생존을 위한 ‘준법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관련 부처의 장관도 마찬가지다. 산업부 백운규 전 장관은 구속을 겨우 면하긴 했지만 여전히 매우 위태로운 상태고 안전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니 관료를 막무가내로 압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정부 부처 관료들도 자신들이 사업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선거용 사업이고 선거가 코앞인데 이를 주도했던 여당이 지금 뒷걸음질 치면 모든 것을 망치고 만다. 관료들은 국회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당으로서는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기를 두는 것은 역시 일정한 단서를 다는 것이 ‘법적 보신책’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자신들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상 근거를 만들어 놓기 위함이다. 이런 현상이 가덕도 신공항에만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국책사업과 정부 주요 정책에도 같이 적용될 것이다. 이런 행태는 관료의 기본적 이해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 되면 문재인 정권과 여당도 숨 고르기에 들어가야 한다. 청와대는 어느 정도 분위기를 알고 있을 것이고 이에 맞게 대응도 할 것이다. 대통령도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없음을 자신들이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당의 분위기는 좀 다르다. 정권이 바뀌어도 자신들은 책임을 질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오히려 무리해서라도 힘이 있을 때 안정장치를 확실히 만들어 놓으면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청와대에서 ‘검찰개혁’의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여당은 이를 무시하고 검찰을 공중분해 하는 입법을 착착 추진하고 있다. 불확실성을 방치하기 보다는 입법을 통해 쇄기와 말뚝을 박아 놓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내년 대선에서 패해 야당이 되더라도 남은 국회의원 임기 중 국회 권력은 계속 유지하니 미리 겁먹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들의 단견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달이 차면 기우는 법. 어떤 권력도 지속적으로 차고 넘치지 못한다. 박근혜 정부의 몰락을 보며 배웠을 법도 한데, 그들의 기억력은 조두 수준이다. 그들의 무리와 불법은 지금도 차고 넘친다. 국민은 알고 있고 어떤 권력의 안전장치도 국민의 분노를 가로막지 못한다. 관료들이 보여주는 반응에도 밀어붙이는 여당에, 이제 국민이 직접 나서 경고를 해야 할 때다. ‘4.7 재·보선’에서 심판을 해, 더 이상 국정을 망치지 말라는 메시지를 명확히 보내야 한다.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글/김우석 정치평론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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