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는 후보지지도 국민의힘은 정당지지도
정당정치와 책임정치…갑론을박과 혼란은 안돼
김종인 위원장과 안철수 대표의 통 큰 결단 기대
한때 우리나라 프로축구에서 ‘닥공’이 유행이었다. ‘닥치고 공격’의 줄임말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지금, 야권은 꼼수 쓰지 말고 ‘닥치고 합당’을 해야 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권후보 단일화’를 가지고 기 싸움, 샅바싸움, 다양한 계산과 기상천외한 꼼수들이 난무한다. 이러면 단일화를 한다 해도 시너지를 기대할 수 없다. 낙승할 수 있는 선거를 예측할 수 없는 혼전으로 밀고 가는 행태다. 국민은 정치권의 계산을 싫어하고 가식적인 통합을 배격하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야당의 총선패배도 통합은 했지만, 계파이익을 앞세우는 계산이 난무해 예상외의 참패를 당했다. 이번 선거에도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야권의 모든 후보와 당 지도부는 역적이 된다. 개인이 역적이 되는 수준을 넘어 야당은 풍비박산될 수도 있다. 야권은 다시 지리멸렬해질 것이고 정권은 더욱 폭주할 것이다. 내년 대선도 여당이 ‘떼 놓은 당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면 본격적으로 야권후보 단일화 협상에 들어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후보 선출 여론조사 방식에 대한 견해차가 크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사무총장인 이태규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후보들이라면 앞에 수식어가 필요가 없고 이름 석 자를 가지고 적어도 시민들이 판단할 정도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후보의 ‘정당’ 배경을 바탕으로 ‘국민의힘 ○○○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중 누가 야권 서울시장 후보로 적합하냐’라는 방식으로 적합도를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기시감이 든다. 각 당의 당리당략 유불리에 입각한 해묵은 논쟁이다. 개인 지지도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앞서지만,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이 압도적이다. 그러니 안철수 후보 측에게서는 정당을 설문에서 지우자고 하고, <국민의힘>에서는 정당정치와 책임정치를 명분으로 정당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안철수 후보 지지도가 높으므로,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단일화 시 안철수 후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가 고민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안 대표가) 기호 2번으로 출마하지 않으면 <국민의힘>의 선거 지원이 어렵다”라고 밝힌 상태다. 단일화 경선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배수의 진’이란 관측도 있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국민의힘> 당원과 지지자 중에 안철수 후보에 대한 거부감과 불편함이 만연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민주당의 공동대표로 소위 ‘진보 진영’을 대표해 새누리당과 맞섰던 인물이다. 지난 대선에선 대선후보로 나서 야권표를 쪼개놓았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반문연대’를 내세우며 옆에 서서 ‘보수진영’의 주인행세를 한다. 어떤 견해 표명도 없었고, 이후에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도 없다. 계속 독자정당의 대표직을 유지하면서, 차기대선에서 고춧가루 역할을 할 가능성도 크다. <국민의힘> 지지자들 처지에선 ‘먹튀(먹고 튄다)’의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적극적 반대는 아니라도 투표를 하지 않을 지지자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다. 재·보궐선거의 낮은 투표율을 고려할 때 불안요인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야권후보가 누가 되든 2번을 달고 나와야 한다’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도 기자들과 만나 “단일화가 아직 되지 않은 상황에서 누가 기호가 어떻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단일화된 후보는 기호 2번으로 출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안철수 후보가 4번을 고집하면 선거운동 지원에 법률적 한계도 있다.
<국민의힘>은 안 후보가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할 경우를 가정해 다른 정당 후보의 선거운동 지원이 적법한지에 대해 법률적 검토를 하는 등 ‘플랜B’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국민의힘> 후보가 확정되면 후보 간, 실무진 간 또는 대표 간 회담이 이어질 것이다. <국민의당>에서는 후보와 대표가 한 사람이니 안철수 후보만 통이 큰 결심을 하면 된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상황이 다르다. 후보 선에서가 아니라 대표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현재 <국민의힘> 최고지도자인 김종인 위원장은 안철수 후보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세상이 다 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의 ‘보궐선거 이전에 사라질 수도 있다’라는 발언이 나오자 구구한 관측들이 넘쳐 난 것이다.
이런 갑론을박과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며, 문재인 정부에 실망과 공포를 느껴 ‘정권에 경고를 하여야 한다’라고 생각했던 국민은 짜증이 난다. 힘을 모두 모아도, 물불 안 가리고 탈법과 불법을 서슴지 않는 여권을 저지할 수 있을지 말지인데, 야권은 작은 이익에 ‘밀당(밀고 당기기)’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이제 야당 지도부가 ‘구국의 결단’을 보여야 할 때다. 당리당략의 소리(小利)를 버리고 대승적 결단으로 힘을 합해야 한다. 그래야 온 국민에 힘을 실어주어, 정권을 심판할 것이다. 정당에서 <국민의힘> 지지도가 높고 후보는 안철수 후보가 앞서간다면 해답은 분명하다. 정당 지지도와 후보 지지도를 합해 무도한 세력에 맞서는 것이다. ‘합당(合黨)’이 가장 이상적이 방법이다. 정당이 다른 상태에선 선거법 논란과 후보단일화 여론조사 설문의 문제, 나아가 선거 지원의 법률적 문제 등 많은 걸림돌이 있다. 이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합당’이다.
안철수 후보는 ‘야권단일화’의 대의를 내세워 초기 주도권을 잡았다. 그리고 제3지대 후보단일화를 통해 이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제 한계에 왔다. 벌써 선거자금 문제 등 ‘치사한 이유’로 ‘<국민의힘>에 입당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정치지도자로서는 피해야 할 관측인데, 스스로 불러온 측면이 크다.
이제라도 ‘야권단일화를 가장 바람직하게 성사하는 것은 합당이다.’라고 선언하고 합당 협상에 나서야 한다. 이 협상이 지연될 우려가 있다면, 후보단일화와 투트랙으로 하면 된다. <국민의힘>도 야권의 맏형으로서 합당을 위한 충분한 명분과 어드밴티지를 주어야 한다. 만약 후보단일화가 되었다고 해도, 이 중요한 시점에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없다면 제1당의 존재감은 사라질 것이고 존재 이유조차 의심받을 것이다. 그러면 내년 대선도 기약이 없어진다. 정권을 만들지 못하는 정당은 존재 이유를 상실해 해산될 수밖에 없다. 생존을 위해 명분을 만들어 합당을 추진해야 한다. 제1야당은 또 나오겠지만, 그동안 국민이 감당해야 할 고통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야당 지도자들은 평생의 주홍글씨가 될 것이다.
한 달 후면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는 결전이 벌어진다. 지난 총선에서 여당이 국회 절대다수를 차지하며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벌이고 있다. 그때도 국민의 심려는 넘쳤지만, 재난지원금이 불만을 희석했다. 그때 야권은 지도력 부족과 공천 실패로 참패를 자초했다. 결국 모든 승부는 상대적이다. 아무리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이 커도 기댈 야당이 지리멸렬하면 국민에겐 선택지가 없다.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민생파탄과 민주주의 몰락이다. <국민의힘> 김종인 위원장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통 큰 결단을 기대한다.
글/김우석 정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