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징계수위 감경...박정림·양홍석 사장 중징계
NH는 독박배상 논란...“내부통제 제재 근거 부족해”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 관련 금융감독원의 제재심의위원회가 마무리 됐지만 과잉 징계가 불러온 후폭풍이 거세졌다. 최근 은행권 징계안이 감경된 반면, 판매사인 증권사 CEO는 중징계 처분을 받으면서 형평성이 무너졌다는 금융투자업계 불만이 확산됐다. 중징계 근거로 든 내부통제 기준도 법적 논리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22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라임사태와 관련해 진옥동 신한은행장,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각각 주의적 경고, 주의를 내렸다. 금감원이 지난 2월 진 행장, 조 회장에게 각각 문책경고, 주의적 경고를 사전 통보했던 것과 비교하면 한 단계씩 떨어진 제재다.
금융사 임원 제재 수위는 해임권고부터 직무정지, 문책경고, 주의적 경고, 주의 5단계로 나뉜다. 문책 경고 이상은 3∼5년 금융사 취업을 제한하는 중징계다. 진 행장은 문책경고를 면하게 되면서 3연임 또는 금융지주 회장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반면 판매사인 증권사의 경우, 전·현직 CEO들이 줄줄이 중징계 처분을 받으면서 상반된 양상을 보였다. 금감원 제재심은 지난해 11월 윤경은 전 KB증권 사장과 김형진 전 신한금투 사장·나재철 전 대신증권 사장(현 금융투자협회장) 등 3명에게 직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박정림 KB증권 사장·양홍석 대신증권 사장은 문책경고 등을 건의했다.
중징계를 통보받은 박정림 사장은 작년 12월 18일 연임에 성공했다. 2018년 취임 이후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한 경영성과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나 문책경고가 확정된다면 올해 임기 종료 후 박 대표의 향후 3년간 금융사 취업은 금지된다. KB금융지주 내에서 차기 국민은행장으로 거론될 만큼 성과를 내고 있는 박 대표는 물론, KB증권에도 큰 타격이다.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둔 양홍석 사장도 문책경고가 확정될 경우 당분간 업계를 떠나야 하는 입장이다. 앞서 라임펀드 판매 당시 대표이사로 재직한 나재철 협회장과 함께 중징계 대상에 오너인 양 사장도 이름을 올리면서 이중징계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양 사장은 라임펀드 판매 당시 대표이사가 아닌 단순 등기 임원으로 임원직을 맡아 왔다.
업계에선 개인투자자 판매액을 놓고 봐도 금감원의 처분이 과도하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 20여 곳에 달하는 은행·증권사 가운데 대신증권의 개인투자자 판매액은 691억원이다. 우리은행(2531억원), 신한은행(1697억원), 신한금융투자(1202억원), 하나은행(798억원)에 이어 5번째 규모다. KB증권은 284억원 규모로 판매했다.
다만 아직 최종 확정까지는 금융위원회의 결정이 남았다. 금감원이 결정한 제재는 증권선물위원회 심의와 금융위 의결 등을 거쳐야 최종 확정된다. 금융위는 관련 제재를 올해 상반기 중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증권사에 대한 제재 논의가 길어지고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의 시각차가 존재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실제 과태료 규모는 지난 2월 증선위에서 상당 부분 감액됐다.
일련의 사태로 증권사들은 “만만한 우리부터 건드린 것 아니냐”고 반발하고 있다. 증권업계는 그동안 업무 영역 등을 놓고 은행권과 갈등을 빚어왔다. 과거 은행이 영업력에서 증권사들을 월등히 앞선 상황에서도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증권업 고유업무를 허용해 업계 불만이 쏟아진 바 있다.
앞서 금감원은 옵티머스 판매사인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에게는 문책 경고를 결정했다. NH투자증권의 경우, 하나은행과 예탁결제원이 함께 책임을 지는 다자배상안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분쟁조정위원회는 NH투자증권에 옵티머스 펀드 관련 전액배상을 권고했다. 판매사와 수탁사, 사무관리사 간 과실 책임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NH투자증권이 독박 배상을 떠안는 것은 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이번 금감원 제재에서 은행과 증권사 간 형평성 문제가 드러나면서 증권업권의 차별의식을 부추겼다”며 “은행과 달리 증권업계 최종 징계 수위가 완화되지 않는다면 불만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이 중징계의 근거로 든 ‘내부통제 기준 마련 미흡’도 법적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금감원은 판매사가 내부통제에 실패한 책임이 CEO에게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금융사가 고위험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내부통제를 소홀히 마련했을 경우 지배구조법에 근거해 CEO를 제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소홀 마련의 범위, 법적 책임자 등 해석에 이견이 잇따르고 있다. 금감원이 명확하지 않은 기준을 적용, 중징계를 남발하면서 감독당국의 권위가 떨어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자본시장 연구원과 금융투자업계는 지난 28일 관련 세미나를 열어 금감원의 제재 논리를 따지는 등 공개적인 비판에 나섰다.
이날 박동필 금투협 법무지원 부장은 “내부통제 기준은 법령이 아닌 내규로 감독자의 제재 근거가 되긴 부족하다”며 “임직원에 권리나 이익을 제한하는 처분을 내릴 때는 반드시 법률상 근거가 있어야 하고, 이런 법률은 그 내용을 명확히 알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