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늑장 동참으로
국내기업 피해 우려
中 제재 등으로
불확실성 증대될 수도
우크라이나 침공 책임을 묻기 위한 국제사회의 대(對)러시아 제재 강도가 날로 높아지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늑장 동참'으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침공 직후 '유감' 표명을 내놓으며 국제사회 눈치를 살피다 뒤늦게 '규탄' 메시지를 내놓은 것은 물론, 제재 동참에 적극성을 띠지 않다 국내 기업 피해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3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의 적용 대상에 휴대전화·자동차·세탁기 등 소비재는 예외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군사 분야와 무관한 품목은 원칙적으로 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게 미국 측 설명이라고 한다.
FDPR은 미국이 통제키로 한 소프트웨어·설계 등을 사용했을 경우, 미국 밖의 외국기업도 관련 제품을 수출할 수 없도록 한 제재조항이다. 적용 품목은 △전자(반도체) △컴퓨터 △통신·정보보안 △센서·레이저 △해양 △항법·항공전자 △항공우주 등 7개 분야에 달한다.
미국의 제재 조치에 준하는 대러시아 독자제재를 도입키로 한 유럽연합(EU) 27개국과 호주·캐나다·일본·뉴질랜드·영국 등 32개국은 FDPR 적용 예외를 인정받았지만 한국은 제외됐다. 제재 동참을 주저하다 미국 주요 동맹국 중 유일하게 면제 대상에서 배제된 것이다.
우리 기업 피해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미국 측이 "소비재는 예외"라는 입장을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관측이다.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등 에너지 제재 동참을 요구할 수 있는 데다 러시아 지원 의사를 밝힌 중국까지 제재할 경우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미 국무부 관계자는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만약 중국 등 여타 국가들이 대러 제재 저촉 활동에 연루될 경우 그들 또한 제재 대상에 오를 것"이라고 했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석유 및 역청유 대러 의존도가 92.6%에 달해, 단기간 내에 공급처를 다변화하긴 쉽지 않다는 평가다.
대북정책 영향 '촉각'
임기 내 대북성과에 '올인'해온 문 정부는 제재 동참에 따른 북한 문제 불확실성 증대에도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구상에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던 러시아가 우리나라의 제재 동참에 반발해 북측에 경도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관련 우려를 반영하듯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전날 이고르 마르굴로프 러시아 외교부 아시아태평양 차관 겸 6자 회담 수석대표와 유선 협의를 진행했다.
외교부는 노 본부장이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조속한 대화 재개 중요성을 강조하며 관련 노력을 설명하는 동시에 러시아 측의 건설적인 역할을 당부했다고 전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한러 및 남북러 간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이 있는 것은 아니다"며 "지금의 여러 제재 참여가 특정 사업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직접 말씀드리거나 판단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남북관계를 진전시켜나가는 데 있어서 러시아 역할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다"며 "(러시아 제재 동참 등) 우크라이나 대응과 함께 러시아와의 협력은 진전돼야 하고 (외교 당국의) 그런 노력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