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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A로 새국면 맞은 전기차 레이스…현대차 위상 달라질까


입력 2022.09.18 06:00 수정 2022.09.16 16:24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美 '보조금 혜택 룰' 변경에 현대차그룹 등 대부분 기업 '패닉'

법안 유예 총력전 외에 시장 점유율 방어 다각적 고민 필요

美 공급망 구축으로 전기차 '게임체인저'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16일(현지시간)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룸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고 있다. ⓒAP/뉴시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발효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새 국면을 맞이했다. 미국 외 지역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완성차업체들에게는 전기차 제조와 배터리 조달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해야 하는 과제가 새롭게 주어졌다.


'보조금 룰' 변경으로 대부분의 자동차업체들이 동일선상에서 경쟁을 펼쳐야 하는 만큼 북미 전기차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 현대차그룹의 경우, 전기차 공장 설립 이전까지의 공백을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따라 '게임체인저' 도약 여부가 달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IRA와 관련해 하위 지침(가이드라인) 마련 시 한국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한편 유사한 상황에 있는 유럽연합(EU), 일본 등과도 공조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정부가 이들 국가들과 협조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한국 뿐 아니라 EU, 일본 주요 자동차업체 대부분이 법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7500달러(1000만원) 보조금을 지원받으려면 북미에서 전기차를 제조할 뿐 아니라 해당 차량에 탑재되는 배터리 부품·광물의 북미 제조 비율도 충족해야 한다. 당장 내년부터 광물 비중은 40%를, 배터리 등 주요 부품은 50% 이상을 북미에서 조달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미국 판매용 전기차를 자국 등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현대차·기아 등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아이오닉 5, EV6를 비롯해 미국에 수출하는 모든 제품이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됐다.


미국이 내건 '최종 조립' 요건에 해당돼 보조금을 지원받는 완성차업체들도 불똥이 튄 것은 마찬가지다. 내년부터는 북미산 광물·부품 비율을 충족하지 못하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가격 경쟁력 하락은 판매와 직결되며 이는 결국 미국 시장 내 도태를 의미한다. 한국 뿐 아니라 EU가 미 행정부, 의회, 백악관 등을 대상으로 긴박하게 움직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EU 통상담당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14일(현지시간) 독일에서 캐서린 타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양자 회담을 가졌다. 이도훈 외교부 2차관도 오는 19∼23일 미국 뉴욕과 워싱턴 D.C.으로 건너가 호세 페르난데스 미 국무부 경제차관을 비롯한 행정부 인사, 미 의회 인사들과 만날 예정이다.


고위급 채널간의 면담 과정에서 전기차 보조금 제도에 대한 우리 측의 우려와 입장, 국내 여론 등을 전달하고 보완 대책 등을 협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IRA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이 미국이 강조해온 경제안보를 확장·발전하는 데에도 부합하다는 점을 부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법 시행을 유예하는 방안으로 보완 대책이 마련될 경우, 현대차그룹은 당장 생존 압박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대차는 2025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미국 조지아에 연간 30만대 규모의 전용 전기차 공장을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


현지 생산 일정을 감안하면 최소 24개월은 유예해야 현대차그룹이 IRA에 대응할 수 있다. 이는 전기차를 생산·판매하는 기업 뿐 아니라 전기차를 사는 소비자의 이익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미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이도훈 외교부 제2차관(왼쪽)이 호세 페르난데즈 미국 국무부 경제차관과 14일(현지시간) 양자면담을 진행했다. ⓒ외교부

다만 법안 수정 요청과 개정까지의 과정이 단기간 내 이뤄지기는 사실상 어려운 만큼 기업 차원에서도 점유율 방어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미 주요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IRA 발효 직후 북미산 공급망 확보에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폭스바겐그룹과 메르세데스-벤츠그룹은 캐나다와 니켈, 코발트, 리튬 등 배터리 소재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한 협정을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체결했다. 이날 폭스바겐은 배터리 원자재 확보를 위해 캐나다 광산 업체들의 지분 인수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전기차 선두업체인 테슬라도 IRA 시행에 따라 독일 생산 계획을 보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산 물량 확보를 위해서다.


현대차그룹도 IRA 발효로 보조금 지원이 끊긴 만큼 판매 방어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놔야 한다. 가격경쟁력에서 다른 브랜드에 밀려 판매가 떨어지면 올 상반기까지 어렵게 끌어올린 미국 시장 점유율(약 9%)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다만 미국 외 지역에 사업장을 둔 다른 완성차업체들도 비슷한 처지에 내몰린 상황이므로, 이를 전기차 시장 패권을 잡기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기존 내연기관차 시장에서는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업체들이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장기간 강자로 군림해왔지만 전기차 시장은 이제 막 시작한 단계여서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선두업체가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부분의 완성차업체들이 IRA 기준에 미달하는 등 사실상 동일선상에서 경쟁하게 됨에 따라, 기존 제조사 뿐 아니라 신흥 전기차업체들도 전기차 선두업체 도약을 위해 보다 공격적인 정책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연기관차 제조사로서의 노하우 뿐 아니라 전기차 제조 설비·기술을 보유한 현대차그룹은 북미 시장 점유율 방어가 성공할 경우 이를 지렛대로 유럽, 아시아 등 전역에서 전기차 강자로 발돋움하는 전기를 맞이할 수 있다.


이미 순수전기차 아이오닉 5, EV6 등이 여러 글로벌 시상대에 오르며 품질과 디자인을 인정받아온터라 미국 시장 점유율을 제대로 방어하기만 하면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도약이 가능하다는 진단이다.


주요 파트너사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이 이미 미국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점도 유리한 대목이다. LG·삼성·SK는 고급 전기차와 저가의 경형·소형 전기차에 각각 적용할 배터리 기술 개발에서 가장 앞서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IRA 발효 직후 혼다와 미국 합작공장을 발표하는 등 수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


SK온도 포드의 합작법인 SK블루오벌은 미국 켄터키주와 테네시주에 3개의 생산설비를 지을 예정이며, 삼성SDI는 인디애나주에 스텔란티스와 합작법인 형태로 공장을 신설한다. 이들과 일찌감치 협업 체제를 구축한 현대차그룹은 IRA가 강조하고 있는 미국 중심 공급망을 한층 더 빠르고 견고하게 구축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IRA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법안 유예를 위해 민·관이 미 정부 설득에 총력적으로 나서는 것이 급선무"라면서도 "이는 유럽 등 다른 완성차업체도 비슷한 처지인 만큼 현대차그룹은 이 점을 최대한 활용해 미국 점유율을 방어하는 데 다각적인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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