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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를 이탈하는 정치


입력 2022.10.27 03:03 수정 2022.10.27 03:03        데스크 (desk@dailian.co.kr)

보수단체·진보단체 세몰이 집회는 계속될 듯

정치권, 자제 호소나 갈등해소는 커녕 오히려 조장

야당 국회의원들, 반정부 집회 참가 가능성 높아

편향된 논리와 주장, 민심의 이반만 가져올 뿐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자유통일당 등 보수단체 집회 참가자들(위쪽 사진). 같은 시간 서울 중구 태평로빌딩 앞에서 촛불승리전환행동이 연 집회 참가자들. ⓒ 데일리안 김민호 기자

주말마다 서울 도심이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22일에는 세종대로 일대에서 보수단체가 ‘자유통일 주사파 척결 국민대회’를, 진보단체가 ‘윤석열 정부 규탄집회’를 각각 개최했다. ‘이재명과 문재인을 구속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는 보수단체 집회에는 경찰 추산 약 3만2000명(오후 3시30분 기준)이 참가했다.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진보단체 집회에는 경찰 추산 약 1만6000명(오후 5시 기준)이 참가했다. 정치적으로 대립적인 수만 명의 시민들이 서로 근접해 있어 충돌이 우려됐지만, 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세몰이 집회는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데, 감정이 격화되면 어떤 상황으로 발전할지 모른다. 집회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지만, 시민들의 평온한 삶을 저해하고, 폭력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는 이런 대규모 집회는 자제해야 한다.


정치의 본령은 국민들의 다양한 이해와 의견을 수렴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이처럼 정치적‧사회적 갈등이 심화될 때 정치권이 나서서 자제를 호소하고 갈등 해소를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을 보면 갈등해소는 커녕 오히려 조장하고 있는 듯하다.


이날 진보단체 집회에서는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연단에 올라 ‘무도한 정부와 검찰 독재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깨어있는 시민 여러분들께서 막아주실 수 있다’, ‘민주 시민 여러분들은 군부독재를 끝장냈던 경험을 갖고 있다’, ‘국정농단의 박근혜 정부도 끝장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석열은 퇴진하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집회 참석자들에게 ‘정권퇴진에 나서 달라’고 선동한 것인가. 그는 지난 8일 열린 진보단체 집회에서도 ‘윤석열 정부가 5년을 채우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대변인은 ‘현 상황의 정치 탄압에 대해 시민들이 목소리를 낼 때 정치인들도 가서 얼마든지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옹호하는 듯 한 입장을 밝혔다. 이런 입장을 미루어보면 상황에 따라서는 더 많은 야당 국회의원들이 반정부 집회에 참가할 가능성이 있다.


돌이켜 보면,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소수의 집회가 ‘광우병 사태’로 번지며 낭패를 당한 바 있다.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광장의 촛불이 여의도로 번졌고 결국에는 탄핵을 당하고 말았다. 야당 내 일각에서는 그 때의 추억에 사로잡혀 다시 한 번 그런 상황이 전개되기를 기대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 때와 다르다. ‘광우병 사태’는 국민의 생명과 관련된 의혹이어서 어린 학생, 주부들까지 거리로 나섰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집회 때는 대통령과 관련된 각종 의혹에 실망한 중도적 국민들도 참여해 촛불을 들었었다.


이에 반해 지금 윤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는 측의 논리, 즉 대통령의 ‘무능’, ‘검찰독재’, ‘정치보복’, ‘야당탄압’ 등을 곧이곧대로 믿거나 그것이 대통령을 퇴진시켜야 할 사안이라고 공감할 일반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야당에서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이재명 대표나 문재인 정부와 관련된 각종 범죄의혹에 대한 수사내용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이른 바 ‘조국 사태’에서 이미 경험했듯이 편향된 논리와 주장으로는 일반국민의 지지와 동조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칫 민심의 이반만 가져올 수 있다.


2,30%를 넘나드는 낮은 지지율은 대통령에게 국정수행을 잘 하도록 경각심을 주는 것이지 그 직에서 내려오라는 의미는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낮은 지지율에 고전했지만 막상 국회가 탄핵을 의결한 후에 지지도가 오히려 상승했고,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정치인들이 창당한 신생 열린우리당이 제17대 총선에서 기존 정당들을 제치고 과반의석을 차지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야당으로서 ‘대통령 퇴진’이라는 정치적 주장은 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대중집회에서 선동하듯 목소리를 높일 말은 아니다. 국회의원이 마이크를 잡아야 될 자리는 광장이 아니라 국회다.


글/이기선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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