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스위스 등서 글로벌 정상 만나며 민간외교 '활발'
지역 사업장 및 협력사 두루 챙기며 '미래 동행 행보'
글로벌 경영 주력하며 그룹 체질 개선 속도낼 듯…M&A도 관심
이재용 회장이 3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그동안 이 회장은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순방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하며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하는 동시에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한 인재 확보에도 나서는 등 숨가쁜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 다양한 글로벌 경영 행보를 보이며 사업 기회를 마련하는 한편 그룹 위상을 한층 더 끌어올릴 인수 ·합병(M&A)에도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 주력 사업인 반도체가 유례없는 불황기를 맞이한 상황에서 체질 개선을 위한 새로운 주문을 내놓을지도 관심사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이재용 회장은 최근 3개월 간 주요 국가·인사들과 연달아 회동하며 현지 네트워크를 탄탄히 다지는 동시에 다양한 사업 협력 가능성을 논의하는 등 광폭 행보를 보였다.
올해 1월 이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순방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해 UAE로부터 300억 달러(약 37조원) 규모의 투자 약속을 받는 데 일조했다. 이달 16일(현지시간) 열린 UAE의 바라카(Barakah) 원전 3기 가동식에는 이 회장이 옆자리에 앉은 만수르 빈 자이드 알나하얀 UAE 부총리와 환하게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UAE 순방에 이어 찾아간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도 이 회장은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역량을 유감 없이 발휘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글로벌 기업 CEO들과 가진 오찬 행사를 빛내기 위해 이 회장은 인텔, IBM, 퀄컴 등을 직접 섭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대한상의 주최로 18일(현지시간) 열린 '코리아 나이트'에서 글로벌 정·재계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국 엑스포 유치 의지를 알리는 데 힘썼다. 이날 엑스포 유치 지원 요청과 더불어 다양한 경제협력 방안들이 논의되면서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는 후문이다.
해외에서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이 회장은 숨가쁜 행보를 보였다. 지난해 11월 '40조 투자 보따리'를 들고 방한한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회동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회장은 왕세자와 재계 총수들간 면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뿐 아니라 한국을 찾은 네덜란드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ASML의 피터 베닝크 최고경영자(CEO)와 반도체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한편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도 서울 모처에서 회동했다. 올리버 집세 BMW CEO와도 경영진 미팅을 통해 오랜 기간 다져온 파트너십을 재확인했다.
이 회장은 국내외를 오가며 탄탄한 네트워킹을 다지는 것과 더불어 주요 사업장 임직원들을 찾아 소통하는 데에도 힘썼다.
지난 1일에는 삼성화재 대전 연수원을 찾아 임직원을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지난달에는 설 연휴를 맞아 출산한 여성 임직원 64명에게 삼성전자 공기청정기를 선물했다. 다문화 가정을 이룬 직원 가족 180명에게는 에버랜드 연간 이용권과 기프트카드를 선물하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조직 내 체질 개선과 역량 확보를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인재 영입이다. 삼성은 스웨덴 통신장비 기업 에릭슨 출신 임원 2명을 영입한 데 이어 미국 GE 출신 윤성호 상무도 생활가전사업부로 영입했다. 애플 출신 이종석 상무는 갤럭시폰 전용 칩을 개발하기 위해 삼성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수평적 조직 문화 확산에도 앞장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수평 호칭' 범위를 기존 직원에서 경영진과 임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앞으로는 경영진끼리도 수평 호칭을 사용하고 경영진이 참석하는 타운홀 미팅이나 간담회, 임원회의 등에서도 수평 호칭을 써야 한다. 회장님 아닌 'JY'(재용의 영문 이니셜)로 조직 문화 혁신에 한걸음 더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글로벌 행보와 조직 문화 혁신에 역량을 발휘해온 이 회장은 초유의 '반도체 한파'를 맞아 실적을 개선하는 동시에 초격차 기술 우위 확보를 위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실제 글로벌 경기 둔화 여파로 삼성전자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43조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4분기 VD(영상기기)·가전 부문은 적자를 기록했으며, 이 기간 DS(반도체) 부문은 2700억원 수준으로 대폭 감소했다.
특히 반도체 부문은 고객사들의 재고 조정으로 당분간 적자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하다. 불확실성 기조가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기술 차별화 및 원가 경쟁력 우위로 수익성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이 회장에게 놓여있다.
삼성전자는 인위적인 감산 없이 지난해 수준의 투자를 지속하는 '버티기' 전략을 택했다. 올해는 '반도체 혹한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내년부터는 반도체 시황 반등이 전망되는만큼 턴어라운드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공급을 줄이지 않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타격은 불가피하겠지만, 하반기부터 안정 기조를 되찾게 되면 가장 많은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분석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과정에서 초격차 기술 우위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 및 투자에 더욱 더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3나노 GAA 2세대 수주를 확대하고 차세대 2나노 개발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적 정상화와 더불어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대형 인수·합병(M&A)도 연내 가시화될 지 관심이다.
현재 글로벌 각국이 반도체 기업 M&A에 상당히 까다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어 삼성전자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보다는 후공정(패키징)에서 활로를 모색하거나 로봇,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에 전략적 투자를 강화하는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도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금산분리 위배 지적을 받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 주식 문제를 해결하면서 해외 투기자본 침투 영향을 받지 않는 방안 마련을 위해서는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
다만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인 만큼 앞으로의 그룹 방향성을 가늠할 메시지가 조만간 제시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