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설명회서 “민간 크라우드펀딩 운영 불가” 밝혀
지자체·전문가 “주장 설득력 낮아... 민간으로 고향사랑기부 흥행 가능”
고향사랑기부제가 본격 시행된 가운데, 행정안전부가 지방자치단체(지자체)와 민간이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막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고향사랑기부제는 개인이 등록주소지가 아닌 지자체에 기부하면, 지자체는 기부금을 주민복지에 사용하는 제도다. 기부자는 답례품과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행정안전부(행안부)가 민 플랫폼을 이용한 지정기부를 막아섰다. 지정기부제란 기부자가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에 기부하는 방식이다.
강원도 양구군은 1월 1일부터 한 달간 154건의 응원으로 약 3200만 원의 기부금이 모금돼 1월말 기준, 도내 지자체 중 최고 모금액인 3777만 원이 접수된 속초시에 이어 2번째로 많은 모금액을 기록했다.
당초 양구군은 출향인 외에도 대한민국 최초로 민간플랫폼을 통해 받은 지정 기부 2건의 프로젝트는 3일 만에 1000만원을 넘어섰지만, 행안부와 제도 시행에 있어 여러 이견이 있어 현재 중단된 상태다.
서흥원 양구군수는 “"이미 고향사랑기부제를 활발하게 추진 중인 일본의 사례를 보자면,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약 90% 이상이 민간플랫폼을 활용하여 기부자의 편의성 증대, 행정 업무 경감, 효과적인 정책 홍보 등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행안부에서 자존심을 걸고 자체 플랫폼 고향사랑e음 사용하도록 만들었는데, 정말 이 플랫폼이 국민들을 위한 것인지 생각 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은 이용자가 쉽고 편하게 기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고향사랑e음이 정말 그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고향사랑e음 시스템은 지자체가 2900만 원씩 분담해서 70억3000만 원을 들여 구축했고 2023년 시스템 운영비 20억 원도 지자체가 800만 원씩 분담했다. 이미 100웍 원 가까이 투입됐는데 다시 개선하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더 부담해야 한다고 하더라”라고 지적하며 “억지 제도는 오래 가지 못한다. 국회의원들도 민간 플랫폼제도에 공감하고 호응하고 있어 개선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양구군은 고향사랑기부제의 활성화와 소멸 위기에 있는 소규모 지방자치단체를 위해 고향사랑기부제 접수 플랫폼을 다양화하도록 법제도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협의해나갈 것"이라고 지정기부가 다시 부활할 수 있도록 힘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행안부에서 민 플랫폼 기부 방안을 제지했지만, 양구군의 성과를 확인한 후 다른 지자체에서 관련 조언들을 얻기 위한 연락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전문가들 역시 답례품 지급을 넘어 지정기부제가 도입돼 각 지자체가 관련 홍보에 적극 나서면 고향사랑기부제가 흥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 일본 고향세 사례에서 민간플랫폼 중심 지정기부제가 정착되면서 큰 폭의 기부금 성장을 경험하기도 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31일, 고향사랑기부제 1차 설명회를 열고, 고향사랑기금사업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신승근 한국공학대학교 교수는 이날 ‘지정기부를 통한 활성화 전략’ 강연에서 향후 지정기부제 도입 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신 교수는 “특정한 사업을 목적으로 기부를 하도록 유도해야 기부자가 기부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며 “특정사업을 제시해줘야 하고, 발굴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플랫폼을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현재 행안부가 운영 중인 종합정보시스템 ‘고향사랑e음’에서만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신 교수는 일부 지자체가 민간 크라우드펀딩 운영을 시도했다 무산된 데 대해 “현행 민간위탁규정상 지자체가 민간 크라우드펀딩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고향사랑e음에 지정기부형이 탑재될 것이며 민간위탁규정이 개정되면 크라우드펀딩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민간이 지자체의 수입을 대신 받을 수 없다”며 “(고향사랑기부금은) 지방세외수입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는 지방자치 담당 공무원만 수령할 수 있다. 따라서 민간 크라우드펀딩이 가능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의견에 대해 전문가는 “현행 법제 하에서도 민간플랫폼을 운영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그와 같은 논리대로라면 행안부도 고향사랑e음을 운영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현행 지방자치법 제117조 3항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그 권한에 속하는 사무 중 주민의 권리·의무와 직접 관련되지 아니하는 사무를 민간에 위탁할 수 있다. 고향사랑기부 모금 및 접수와 관련된 사무는 주민의 권리·의무와 무관하기에 민간위탁이 가능하다는 해석이다. 고향사랑기부는 주민이 아닌 이들에게 기부를 받기 때문이다.
권선필 목원대 교수는 “민간플랫폼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며 “행안부는 모금주체인 지자체가 다양한 방식으로 모금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계속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행안부가 근본적으로 고향사랑기부를 활성화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지경”이라면서 “500만원 상한 규정이나 거주지 기부 제한 관련한 문제는 기술적인 문제에 가까운 내용으로 행안부가 적극행정으로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행안부 측은 지자체가 세금 외 수입이 있는 경우 징수할 수 있는 권한은 지자체 세외수입 계좌밖에 없으므로, 민간이 플랫폼을 운영하는 방식은 안된다고 주장한다. 지방세외수입금의 징수 등에 관한 법 2조 3항에 따르면, ‘징수공무원’을 지방세외수입금의 부과·징수 등에 관한 사무를 위임받은 공무원으로 지칭하고 있고, 10항 ‘징수’ 항목에서는 지자체가 지방세외수입징수금을 거둬들일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와 전문가는 고향사랑기부 민간플랫폼을 운영하는 경우에도 PG사(결제대행사)를 통해 기부금을 지자체가 직접 접수하는 것이라 큰 문제가 없다고 반박한다. 행안부 주장대로라면, 고향사랑e음 역시 기부금 접수 등을 민간 결제업체 등에 위탁했기 때문에 불법인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지자체 관계자는 “민간플랫폼을 운영하더라도, PG사(결제대행사)와 지자체가 직접 계약하여 진행하기 때문에 대행서비스를 하는 민간업체는 기부금에 일체 개입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행안부가 우려 입장을 내비친다면, 기부자가 지자체 계좌에 직접 이체를 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 측은 행안부가 지엽적인 이유로 민간플랫폼 활성화를 막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모 지자체 관계자는 “행안부는 민간플랫폼이 안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지자체가 많은 기부금을 모집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맞다”며 “오히려 행안부가 적극 행정을 펼쳐서 다양한 모금 접수 방법을 제안해야지 않나”라고 토로했다.
또한 현행법 상으로 민간 온라인 플랫폼이 기부금을 모집할 수 있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 약칭: 기부금품법 ) 7조 1항은 기부금의 모금방법에 대해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언론기관, 금융기관, 그 밖의 공개된 장소에서 접수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고향사랑기부금법 제8조 1항에도 기부금 접수처로서 ‘그 밖의 공개된 장소’가 명시되어 있는데 2012년 발간한 ‘행정안전부 기부금품 모집제도 해설서’에서 기부금 모집방법의 예시로 거리모금 및 온라인모금을 지칭하고 있어, ‘그 밖의 공개된 장소’에 온라인모금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진도 국민총행복전환포럼 이사장은 7일 열린 ‘고향사랑기부제 지역상생방안 심포지엄’에서 기부금 모집에 지자체와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행안부가 지자체로부터 70억3000만원을 받아 ‘고향사랑e음’을 구축했으나, 지자체나 민간이 관여할 여지는 없다”며 “행안부의 독점망인 ‘고향사랑e음’을 통한 기부금 모금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고향사랑마음’을 움직여 기부금을 모금하기 위해서는 민간의 창의력과 역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선필 교수 역시 고향사랑기부제 중심에 민간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기부의 주체도 민간이고, 답례품 업체, 지정기부 업체 등 모두 민간이다. 공무원이 모든 걸 다 해서는 안된다”며 “핵심 프로세스는 행정에서 담당하고 다양한 민간이 참여한다면 새로운 생태계가 생겨 제도 활성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일본 고향납세제도의 성공사례에서 배워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