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이후에도 ‘고질적 부패' 지속…민심 악화 등 영향
후임 장관에 반러 저항민족 ‘크림 타타르인’ 출신 내정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국방장관을 전격 경질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럽연합(EU) 및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위해 추진 중인 부패청산작업의 하나라는 관측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3일 밤(현지시간) 화상연설을 통해 “올렉시 레즈니코우(57) 국방장관을 교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후임 장관에 루스템 우메로우(41) 국유재산기금 대표를 지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개전한지 1년 6개월여 만의 일이다. 국방장관 지명자는 의회 인준을 받아야 정식 임명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레즈니코우 장관은 550일 이상 (러시아와) 전면 전쟁을 치렀다”며 “나는 국방부가 군대 및 사회 전체에 대해 새로운 접근방식, 다른 형식의 상호 작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해임 배경을 설명했다. 러시아와 장기전 국면과 사회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국방장관을 교체하기로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NYT는 전쟁이 지속됨에 따라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인식, 레즈니코우 본인의 사임 요청, 국방부를 둘러싼 스캔들에 대한 비판 여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국방부가 연루된 다양한 부패스캔들이 주요인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우세하다. 러시아어, 영어, 폴란드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레즈니코우 장관이 지난해 2월 러시아 침공 이후 서방 국가들을 직접 방문하며 군사적·인도적 지원을 끌어오는 데에 크게 이바지했지만, 올해 1월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식량을 부풀려진 가격에 구매했다는 등의 각종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뒤 줄곧 부패문제가 국가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돼 왔다. 부패감시단체 국제투명성기구(TI)에 따르면 2021년 우크라이나의 ‘부패인식지수’는 전 세계 180개국 가운데 120위를 기록했다. 유럽에선 러시아에 다음으로 부패 문제가 심각하다는 평가다.
특히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는 상황에서도 구호물자 배분, 징병·조달문제 등과 관련해 각종 비리 사건이 터졌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시에 부패를 저지르는 경우 국가반역죄로 다스리는 법안을 마련하겠다며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새 국방장관에 지명된 우메로우 내정자는 야당인 홀로스(목소리)당 소속 전직 의원이다. 지난해 9월부터 국유재산기금을 이끌고 있는 그는 대통령 특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흑해곡물협정 등 민감한 협상에서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중책을 맡아 왔다.
그가 우크라이나에선 보기 힘든 크림 타타르인 출신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크림 타타르인은 크림반도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저항운동을 펼쳐온 튀르키예계 소수민족으로 대부분이 수니파 무슬림이다. 우메로우 내정자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등이슬람권 지도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왔다고 WSJ은 전했다. 튀르키예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흑해곡물 수출이나 포로교환 협상을 중재해 온 나라들이다.